놀자, 책이랑

세여자 / 조선희

칠부능선 2021. 9. 28. 12:28

1920년, 청계천으로 여겨지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세  여자의 사진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세 여자는 무산자계급 해방에 일생을 바칠 것을 맹세하며 혁명활동가 임원근, 박헌영, 김단야와

동지적인 부부가 된다. 그러나 혹독한 시대의 부침에 부부의 의리와 인연을 끝까지 이어가지는 못한다. 

상해와 경성, 블라디보스톡, 모스크바, 뉴욕, 타이페이, 남경, 무한.... 등지를 오가며 사회주의 혁명의 길을 걸었다.

세 여자의 시대를 앞서가는 자유로운 영혼과 치열한 삶에 경의와 애도를 보낸다. 

 

 

 

* 마르크시즘의 시작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우정이었다. 또한 볼세비키의 뿌리는 1825년 차르체제에서 귀족 중의 귀족인 근위대 청년장교 신분으로 차르에 도전했다 총살다하거나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죽었던 데카브리스트들이었다. 하지만 혁명이란 처음처럼 마무리까지 정의롭고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혁명은 함께 하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지만 권력은 나눠 갖지 못한다는 게 혁명세대 정치인의 아이러니다.  (205쪽)

 

* 정숙은 바로 경성의전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은 아이를 낳은 순간 혼절해서 첫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했던 난산이었다. 폐렴은 이미 늑막염으로 발전해 있었다. 그녀는 해산하자마자 흉부에 들어찬 물을 호스로 뽑아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스캔들이나 정치적 탄압이나 경제적 파산이 아니라 육체의 기습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33쪽)

 

* 한일합방 때 수십 명 일가가 집단 망명한 이회영 어른네는 만주에 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농토를 개간할 때 왕년의 노비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마님들이 밥 지어 날랐다 한다. 정숙은 항대에서 혁명 이론을 공부할 때보다 팔 걷어붙이고 밭을 갈 때 '이것이 혁명이고 진보구나' 실감했다.  (391쪽)

 

* 지금까지 정숙은 뜻대로 살아왔다.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한 적없다. 싫은 남자와 참고 산 적도 없다. 특별한 생활신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모험과 자존과 충동의 강렬함이 그려를 움직였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에 안 들면 떠났다. 떠나는 건 쉬웠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하책下策이었다. 이제는 머무르고 눌러두고 견디는 걸 배워야 한다. 인내는 나이가 주는 선물이다. (3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