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태어났음의 불편함 / 에밀 시오랑

칠부능선 2021. 10. 1. 11:06

에밀 시오랑은 극단적 비관주의자다.

삶이란 오직 견뎌내야하는 것,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 태어나 버렸으니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태어났음을 불편하게 여기는 생각에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짧은 글이 묵직하게 머리를 친다. 

선의를 뺀 삶의 적나라함, 나는 아직도 생을 직면할 용기가 없는가보다. 아이러니와 페러독스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순하게 읽힌다. 그럼에도 단번에 읽을 수가 없다.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프랑스를 오가며 산 에밀 시오랑은 여러차례 문학상을 거절하고, 단 한번 1950년 리바롤상을 받았다. 생계가 어려워 그 상이 아니면 노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무엇을 시도하든, 조만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작가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환상을 가지기에 부적절한 성정이 대단한 유산이라니.... 

평생 직업을 가져보지 않았으나 평생 동지, 시몬 부에 (영어 교수)를 만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며... 

나는 '천성'을 거듭 생각했다. 벗어나기 힘든 DNA도.

 

 

 

생의 무참한 무의미함 앞에서 그것을 감당하며 이겨내게 하는 절절한 각성의 아포리즘!

나는 에밀 시오랑을 전투적 이상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는 절망을 뒤집어 읽으면, 그가 생에 대한 엄청나게 높은 비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는 비젼을 위해 자신을 부수면 끝까지 싸운다. 그 싸움이 승이가 아니라 패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 투쟁의 이상주의는 더욱 극적으로 확인된다. 시오랑에게 좌절은 절망의 계기가 아니라, 각성의 계기이다. 

- 김정란 (시인, 옮긴이) 

 

 

*니체는 걷고 있을 때, 생각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상카라(8세기 철학자, 힌두교 종교지도자)는 걸으면 생각이 흩어져버린다고 가르쳤다. 

이 두 가지 명제는 똑같이 타당하다. 따라서 둘 다 진실이다. 누구나 다 한 시간, 때로는 1분 안에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51쪽)

 

* 드러눕는 즉시, 시간을 흐르는 것을, 분초를 헤아리는 것을 먼춘다. 역사는 서 있는 종의 산물이다.

직립 동물로서, 인간은 자신의 앞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져야 했다. 그 앞은 공간적 앞일 뿐 아니라 시간적 앞이기도 하다. 미래의 근원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87쪽)

 

*나쁜 시인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시인들의 글만 읽는다는 사실이다(나쁜 철학자들이 철학자들의글만 읽는 것처럼). 식물학이나 지리학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자신의 분야와 멀리 떨어진 분야를 자주 접해야만 풍요로워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자아가 강렬하게 작용하는 분야에서만 사실이다. (126쪽)

 

* 한 민족은 단 한 차례의 혁명밖에는 하지 못한다. 독일인들은 종교개혁의 위헙을 결코 다시 이루지 못 했고, 이루었다 해도 먼젓번의 혁명에 미치지 못했다. 프랑스는 영원히 1789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나 다른 모든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혁명 분야에 있어 자기 자신을 모방하는 이 경향은 안심되는 것이면서 동시에 비통한 일이다. (213쪽)

 

*우리가 신앙으로부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대화자로서 신밖에 떠올릴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에는, 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미친 짓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극단적 단계에 이른 고독은 대화의 어떤 형태를 요구하는데, 그 형태 역시 극단적이다. (3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