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세상에나, 제목에 울컥 목이 멘다. 이런 비장함 없이 글을 쓰는 내게 이 시집은 죽비다.
김용만 시인이 등단 34년만에 낸 첫 시집이라는 것도 저릿이다. 품고만 있었는가, 아니 시 자체로 살고 있었던가.
깊은 눈 시인은 삶이 시다.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새들은 날기 위해
쉴 참마다 머리를 산 쪽에 둔다
가벼워지기 위해
뇌의 크기를 줄이고
뼛속까지 비운다
쉽게 떠나기 위해
움켜쥘 손마저 없앴다
새들은 쉴 참마다
깃털을 고르고
날면서도 똥을 싼다
자유로이 떠니기 위해
깃털 하나만큼 더 가벼워지기 위해
오늘은 먼 길 떠나려나
(29쪽)
맨날 그럽니다
소양에 온 지 삼 년
오늘은 꼭 책상에 앉아야지
하다가도 또 호미 들고 나섭니다
맨날 그럽니다
누구는 시집이 다섯 권째고
소설집을 내고
무슨 상을 받았다 자랑들 해쌓지만
나는 밭이 열 개 아닌가
꽃 키우며 수백 마리 벌, 나비와
저 앞산 끌어안고
살지 않는가 그러다가도
뭐 부럽기는 조금 합니다
뒤란 화단에 흙을 붓다
앞산을 보니
잎 떨군 가지마다
햇살 눈부십니다
저리 홀가분하게 사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59쪽)
ㆍ‘태어나’와 ‘산다’ 사이에 존재하는 ‘첫’
삶은 ‘첫’입니다. ‘첫’은 설렘과 호기심, 흥분의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첫’이 지나면 그 자리에 권태와 무료, 무관심이 차지합니다. 어제처럼 반복되는 지루한 삶이지요. 하지만 매순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진폭이 크지 않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날들은 늘 ‘첫’입니다. 첫사랑, 첫걸음, 첫 출근, 첫눈 그리고 첫 시집. 1987년 ‘실천문학’ 등단 이후 34년 만에 첫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삶창)를 낸 김용만 시인(1956~ )의 이름 앞에는 ‘노동자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문학의 ‘첫’을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시작하고, 일과시 동인으로 오래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온통 녹색인 시집을 펼치면 “임실에서 태어나 완주에서 산다” 딱 한줄의 약력이 보입니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 쓴 것이겠지요. ‘태어나’와 ‘산다’ 사이에 많은 ‘첫’의 삶이 존재하지만, 시인에겐 다 부질없는 일일 겁니다. 현재의 ‘첫’이 중요하니까요.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2108301104151#csidx8e49c1b03511e1790e5d4bd9c03f3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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