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 김용만

칠부능선 2021. 9. 14. 18:29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세상에나, 제목에 울컥 목이 멘다. 이런 비장함 없이 글을 쓰는 내게 이 시집은 죽비다. 

김용만 시인이 등단 34년만에 낸 첫 시집이라는 것도 저릿이다. 품고만 있었는가, 아니 시 자체로 살고 있었던가. 

깊은 눈 시인은 삶이 시다.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

 

 

새들은 날기 위해

쉴 참마다 머리를 산 쪽에 둔다

 

가벼워지기 위해

뇌의 크기를 줄이고

뼛속까지 비운다

쉽게 떠나기 위해

움켜쥘 손마저 없앴다

 

새들은 쉴 참마다

깃털을 고르고

날면서도 똥을 싼다

 

자유로이 떠니기 위해

 

깃털 하나만큼 더 가벼워지기 위해

 

오늘은 먼 길 떠나려나

(29쪽)

 

 

 

 

맨날 그럽니다

 

 

소양에 온 지 삼 년

오늘은 꼭 책상에 앉아야지

하다가도 또 호미 들고 나섭니다

맨날 그럽니다

누구는 시집이 다섯 권째고

소설집을 내고

무슨 상을 받았다 자랑들 해쌓지만

나는 밭이 열 개 아닌가

꽃 키우며 수백 마리 벌, 나비와

저 앞산 끌어안고

살지 않는가 그러다가도

뭐 부럽기는 조금 합니다

뒤란 화단에 흙을 붓다

앞산을 보니

잎 떨군 가지마다

햇살 눈부십니다

저리 홀가분하게 사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59쪽)

 

 

 

 

 

 

 

 

 

 

 

 

ㆍ‘태어나’와 ‘산다’ 사이에 존재하는 ‘첫’

삶은 ‘첫’입니다. ‘첫’은 설렘과 호기심, 흥분의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첫’이 지나면 그 자리에 권태와 무료, 무관심이 차지합니다. 어제처럼 반복되는 지루한 삶이지요. 하지만 매순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변화의 진폭이 크지 않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날들은 늘 ‘첫’입니다. 첫사랑, 첫걸음, 첫 출근, 첫눈 그리고 첫 시집. 1987년 ‘실천문학’ 등단 이후 34년 만에 첫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삶창)를 낸 김용만 시인(1956~ )의 이름 앞에는 ‘노동자 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문학의 ‘첫’을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시작하고, 일과시 동인으로 오래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온통 녹색인 시집을 펼치면 “임실에서 태어나 완주에서 산다” 딱 한줄의 약력이 보입니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안 쓴 것이겠지요. ‘태어나’와 ‘산다’ 사이에 많은 ‘첫’의 삶이 존재하지만, 시인에겐 다 부질없는 일일 겁니다. 현재의 ‘첫’이 중요하니까요.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202108301104151#csidx8e49c1b03511e1790e5d4bd9c03f3c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