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
큭큭 웃음을 자아내게 하던 빌브라이슨, 여전하다.
에팔레치아 트레일은 장거리 등반이다.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조지아주에서 메인 주까지 14개주를 관통하는 대 장정이다.
3,520킬로미터 중에 1,392킬로미터를 친구와 함께 걸은 기록이다.
떠나기 전에 안내책자들을 읽으며 상상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여곡절과 좌충우돌 중에도 곳곳에 폭소가 장전되어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독특한 여행을 숨죽이며 따랐다. 상상할 수 없는 잔잔한 스펙타클이다.
함께 간 친구 카츠도 특이한 케릭터다. 결국 친구를 잃어버리고, 길을 잃어버린 후 다시 만나 한 마음으로 종주를 포기한다.
첫 장에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이 다섯 페이지가 이어진다. 뒷표지에 몇 줄로 감당이 안 되는 거다.
그러나 나는 이 다섯 페이지를 그냥 넘기고, 책을 다 읽고 다시 돌아와 읽었다.
그리고 뽑은 하나다.
* "한 번에 한 장章씩 음미하라 - 그리고 길거리에서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로하여금 당신이 무엇때문에 그렇게 크게 웃는지 궁금하게 하라" - 포트 워스 스타- 텔레그램
(12쪽)
* 나는 에팔레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경험이 바로 자신을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그래서 가공 처리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즘을 느낄뻔했다.
(89쪽)
* 트레일에서 내려오면, 멀리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어딘가로 자동차를 몰면 얼마나 기만을 당했었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는, 산과 숲은 단지 배경일 뿐이다. 여기에 현실의 세계, 즉 주유소와 월마트, K-마트, 던킨 도너츠, 블로버스터 비디오 대여점,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도 없이 펼쳐진 현란함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카츠마져도 그게 싫은 모양이었다.
"제기랄, 흉측하네."
그는 놀라워했다. 마치 전에 그런 것들을 본 적이 없다는 듯이, 나는 그를 지나서 그의 어깨선을 따라 대초원의 크기만 한 주차장이 딸린 쇼핑몰을 바라보며 동의했다. 정말 고약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도 함부로 일제히 오줌을 갈겼다.
(173쪽)
* 미국에서는, 제기랄, 아름다움은 차를 몰고 가야 마주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고 자연은 양자택일적 제안 - 탁스 댐이나 수많은 다른 곳에서처럼 성급하게 정복하려고 하거나 애팔에티아 트레일처럼 인간과 동떨어진 곳에서 신성시 하는 것 -이 되어버렸다. 어느 쪽이든 사람과 자연이 서로가 이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말하자면 델라웨어 강 위에 더 멋진 다리를 놓는다면 자연의 권위를 더 높일 수 있고, 에팔레치아 트레일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소나 경작된 밭을 때때로 지나간다면, 즉 전체가 자연 속에 파뭍혀 있지 않다면 더욱 흥미롭고 보람도 있는 트레일이 될 터이다. (288쪽)
* 그레이룩은 애팔래치아에서 가장 문학적인 산이다. 허먼 멜빌은 그레이룩의 서쪽 경사면에 자리한 애로헤드라는 농장에 살면서 <모비딕>를 집필할 때 서재 창문을 통해서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매기 스타이어와 론 맥카도가 지은 뉴잉글랜드 산의 역사에 대한 기록인 <산맥 속으로>에 따르면, 멜빌은 그레이룩을 보고 고래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책을 다 쓰고 난 뒤 친구들과 함께 산 정상에 올라가서 새벽녘까지 파티를 벌였다. 너세니얼 호손과 에디스 와튼도 근처에 살았고 거기서 일을 했으며, 1850~1920년대에 이르기까지 뉴잉글랜드와 관련 있는 문학인들 중에서 그 경치를 감상하려고 올라오거나 차를 타고 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301쪽)
* 오르막길을 정복하면 마치 고래등 위를 걷는 것처럼 우아하게 경사진, 헐벗은 수백 미터의 화강암 절벽이 나타났다. 봉우리 정상마다 전경은 누부셨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끝없이 짙은 녹색의 숲과 남색의 호수들, 그리고 외롭게 물결치는 산맥들이 펼쳐졌다. 대부분의 호수들이 장대하면서도 인간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곳처럼 보였다. 세계의 신비스러운 구석을 침투하고 있다는 매혹적인 상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살인적인 태양 때문에 정상에서 꾸물거릴 수는 없었다. (362쪽)
* "그래, 트레일을 포기해서 기분이 언짢아?"
카츠가 한참 후에 물었다.
확실치가 않아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대해서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가지지 않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트레일이 지겨웠지만 여전히 이상하게도 트레일의 노예가 되었고, 지루하고 힘들 일인 줄 알았지만 불가항력적이었으며, 끝없이 펼쳐진 숲에 신물이 났지만 숲의 광대무변에 매혹되었다. 나는 그만두고 싶었지만,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싶기도 했다. 침대에서 자고 싶기도 했고,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다. 봉우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했고, 다시는 봉우리를 안 보고 싶기도 했다. 트레일에 있을 때나 벗어났을 때가 항상 그랬다. (3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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