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게재한 칼럼을 묶은 책이다.
홍세화 사회비평에세이, 그의 생각에 머리는 끄덕이며 마음이 몹시 불편해졌다.
아주 오래전 그가 <나는 빠리의 택시운잔사>를 그만두고 돌아왔을때 그의 강의에 간 적 있다. 아담한 체구에 맑은 얼굴이었다 그때는. 여자들이 많은 강의실에 좀 수줍은 표정이었지만, 여자들이 몰려다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뜨끔했다. 그때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내 습성을 반성했다.
앞 날개 작가 소개다.
홍세화
* 실상 우리는 누구도 남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면, 나 또한 아무한테도 설득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른 것처럼 살아간다. 이런 사회 구성원에게 확증편향이 한번 빠지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함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또 '나'로서 생각한 적이 없으므로 남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지혜도 갖기 어렵다. 나의 자리에서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남의 자리에서 생각하겠는가. 한국인의 확증편향을 강고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다.
확증편향에서 벗어나기, 그것은 나부터 '회의하는 자아'가 되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다. 그런 전제 아래 어렵더라도 이웃을 설득하는 수밖에, 학교와 교실에서 생각하는 교육이 펼쳐지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회의하면서 전진하자!"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구호였다. 개인도 사회도 운동도 회의하지 않으면 변화하기 어려우며 변화하지 않으면 전진할 수 없다.
- 71쪽
* 고통의 깊이만큼 타자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걸까. 작년 9월, 1300회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는 " .... 한국 군인들에게 우리와 같은 피해를 당한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베평화재단 (www.kovietpeace.org)은 청와대 앞에서 한국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1인 시위와 함께 '만만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만'일의 전쟁, '만'인의 희생, '만'인의 연대 .... . 4월에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시민평화법정'도 열 계획이다. 부디 많은 시민들이 '만'인의 대열에 참여하기를 ... .
- 113쪽
* "모든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반혁명주의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말이다. 이 말을 오늘날의 국면에 적용하면, 박근혜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수준 차이가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탄핵이라는 비상조치를 불러오게 됐다. 이를테면 "이게 나라냐"는 외침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타오른 촛불들은 박근혜 정부에 비해 높은 국민의 수준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4년 전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국민의 수준이 오늘 갑자기 올라간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박근혜 정부가 국민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96%의 국민이 알기 위해 결정적 단서가 우연히 발견되어야 했다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오늘날까지 정치권과 언론은 물로, 검찰과 지식인을 포함한 전문가 집단은 도대체 무엇을 했던 것일까?
- 211쪽
*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한다. 하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자칫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의 하나는 개탄하는 것으로 자신의 윤리적 우월감을 확인하면서 자기만족에 머무르는 것이다. 실상 세상이 혐오스럽다고 개탄하기는 쉬운 일이다. 개탄을 넘어 분노할 줄 알아야 하고, 분노를 넘어 참여하고 연대하고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에 설득하기 어렵고, 그래서 모두 설득하기를 포기한다면,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다시금 되새기자.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므로 우리가 가야 하는 것이다.
-2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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