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그 후, 15년

칠부능선 2021. 3. 16. 16:18

 

그 후, 15

노정숙

 

 

노인의 어서 죽어야지하는 말이 3대 거짓말 중에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쪽으로 더 기운다. 몸의 쇠락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데 노인이라고 마냥 살고 싶겠는가.

아직은 몸보다 마음이 부대낄 때가 많다. 조심성 많아진 몸의 신호를 무지르며 여전히 꿈꾸는 가슴이 난감하다. 가끔 먹통이 되어버리는 관계에 기운이 빠진다. 그러면 나는 매일 먹어야 한다는 혈압약을 띄엄띄엄 먹다가 한참 먹지 않는다. 고혈압은 가족력이다. 아버지와 큰오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그래도 난 강단 있는 엄마 체질을 닮아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수년 전부터 처방을 받고 있다. 며칠 안 먹으면 얼굴이 붓는데, 더 오래 버티면 그런대로 몸이 적응을 하는지 아무 증상이 없다. 홀로 떠나는 연습을 소심하게 해본다.

 

미셸 투르니에는 짧은 글 긴 침묵의 끝부분에 자신의 추도사를 썼다. ‘1924년 출생 2000년 사망, 파리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즉시 그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불친절한 도시라는 것을, 특히 젊은이들에게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생 동안 슈브레즈 골짜기의 한 작은 마을의 사제관에서 줄곧 살았다. 그는 오랫동안 철학공부를 하고 나서 뒤늦게 소설에 입문했다. 그가 구상한 소설은 언제나 가능한 한 관습적인 외관을 갖춘, 지어낸 이야기들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적극적인 빛을 발하는 형이상학적 하부구조를 감추고 있다.’

이어서 미리 쓴 묘비명은 내 그대를 찬양했더니 그대는 그보다 백 배나 많은 것을 내게 갚아주었도다. 고맙다. 나의 인생이여!이다. 이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건네는 말일 듯하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죽은 76세가 자신이 죽기에 아주 좋은 때이며, 행운과 이성을 잃지 않은 채 늘그막의 고통과 욕됨을 피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는 2000, 그는 죽음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15년을 더 살다 91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침의 기도: 주여, 저의 가는 길 위에 광휘에 찬 사랑을, 저의 삶을 휩쓸어버릴 사랑을 놓아주소서! 마음도 섹스도 진정된 가운데 이런 기도를 드리는 내게 어찌 두려움과 떨림이 없겠는가. 불타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그것이 결국은 성취되고 만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덧붙이는 기도: 주여, 제가 소원을 빌거든 부디 무조건 들어주지는 마시옵소서!’ 독신주의자였던 그의 기도를 들으며 나는 연신 키득거렸다.

그의 소설과 에세이는 어느 장을 열어도 재미가 있다. 철학으로 다져진 사고와 독특한 통찰이 그의 말대로 명도 높은 빛을 발한다.

늙는다는 것은 겨울을 위하여 선반에 얹어둔 두 개의 사과, 한 개는 퉁퉁 불어서 썩는다. 다른 한 개는 말라서 쪼그라든다. 가능하다면 단단하고 가벼운 후자의 늙음을 택하라고 했지만 어려운 일이다. 썩기 전에 욕심과 아집을 털어내고 가벼워져야 한다.

2004, 그의 책을 번역한 김화영 선생이 슈브레즈의 집에 방문했을 때 몇 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흡혈귀에 대해 물으니, 흡혈귀가 다닐 만한 길인 파리의 파르 라 세즈 묘지에서 몽마르트르 쪽을 걸어봐야 하는데 그 길을 걸을 수가 없어서 못 쓰고 있다고 한다. 하기는 1997년에 한국 문학 포럼에 초청했으나 먼 여행이 힘들다고 거절한 바 있다.

젊은 날 그는 소설 메테오르를 쓰기 전에 세계를 한 바퀴 돌았고, 황금 물방울을 쓸 때는 사하라 사막까지 찾아갔었다. 자료를 잔뜩 쌓아 놓고도 현장에 가서 보고 느껴야 쓸 수 있다니, 거동이 불편해진 그의 마지막 15년을 헤아리면 애도가 깊어진다. 커다란 도서관 하나가 서서히 불타기 시작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참에 나는 죽음을 마땅히 받아들일만한 희망 나이를 생각해 본다. 희망 나이의 기준은 사람마다 정신과 육체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다. 늙거나 병이 들수록 생의 애착이 깊어진다고도 하지만, 그동안 많은 죽음을 바라보며 나름 마음을 다지기는 했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엄마한테서 늘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학교를 마치는 것만 봐도 좋겠네. 결혼하는 것만 봐도 한이 없겠네. 이렇게 소원하셨는데 엄마는 외손녀가 대학생이 되고, 외손자가 군대에 가는 것까지 보셨으니 미안함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엄마의 희망 나이는 70세도 안 되었지만 84세에 돌아가셨다. 자리보전을 하지 않고, 평소 기도처럼 잠자듯이편안히 가셨다. 그 무렵 셋째 오빠가 심각하게 아팠는데 엄마한테 알리지도 못하고 조마조마했었다. 엄마가 그리도 속전속결로 돌아가신 것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와 생각하니 엄마한테 미안하다. 그때 나는 엄마의 생이 그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미안해서 그 나이를 넘고 싶지 않다.

희망 나이를 넘어선 나머지는 잉여시간이다. 의무나 책임에서 벗어난 그 시간에 몸이 자유롭다면 홍복이다. 정신을 벼려 다그칠 일이 아니라 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굼뜬 몸과 헐렁해진 생각은 잘 맞는 짝이다. 재촉하지 않아도 죽음은 다가온다. 죽음은 삶의 완결이다. 이 불변의 사실이 인간을 그나마 겸손하게 한다.

아무도 모르게 들끓던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차선이 최선인 시간이다. 극적인 삶이나 명문이 아니어도 괜찮다. 별일 없이 오늘을 살아낸 게 어딘가. 책을 주문하고 쇼핑을 하고 다시 혈압약을 먹는다. 절로 무장무장 늙어간다.

 

<인간과 문학> 2021년 봄호 (통권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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