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생은 아물지 않는다 / 이산하

칠부능선 2021. 1. 15. 15:26

 책상 위에 쌓인 책 중에 얼른 잡는 것이 있고 마냥 바라만 보는 책이 있다. 앞 날개를 읽고 마음이 무거워 바라만 봤다. 한참을 그러다 잡았다.

단숨에 읽기 미안한 내용이지만 난 인내성 없이 후르륵 다 읽고 만다. 좋은 것을 남겨두고 야금야금 먹는 짓을 못한다. 배가 불러 불쾌할 지경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폭식을 하고만다. 

월간 '유레카'에서 읽은 글도 있는데 다시 숙연해진다. '숨은 꽃'은 변함없이 향기롭다.

지나친 긍정일지라도 도처에 숨은 꽃이 피어나고 있으리라 믿는다. 

국민총행복지수 세계1위라는 '부탄'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 행복에 대한 예의라고, 

문명을 멀리한 그 지상낙원의 행복은 인도의 불가촉천민과 네팔 빈민들의 노동을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 그들은 선거권도 없고 국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부탄의 노예일 뿐이다.

잔잔하다가 울컥거리다 뜨끔뜨끔 찔기기도 하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다녀온 '로도스'가 저런 은유로도 쓰인다니 반갑다. 

 

 

* 맨발

부처는 처음에 연꽃을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두 발을 보여주었다. 수행은 삭발한 머리가 아니라 세상을 지탱하는 두 발로 하는 것이다. 두 발이되 맨발이어야 한다.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발을 보여준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두 발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아래를 볼 때 그 맨발에서 연꽃이 피어난다. 그것이 수행의 염화미소다. (97쪽)

 

*여기가 로도스

 이솝 우화에 로도스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대 그리스의 한 청년이 멀리 로도스섬에 갔다 오더니 자기가 거기 있을 때 가장 높이 뛰어올랐다고 자랑했다. 청년의 말을 계속 의심하던 누군가가 이렇게 이쳤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나무의 생명이다. - 단테 신곡에서

 

세계적인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쓴 회고록의 공통점은 자신이 언어의 벽돌로 쌓아올린 이론의 철옹성이 결국 자옥한 현실 앞에서는 무력했다는 쓸쓸한 회한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장미꽃은 공중에서 아래로 피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핀다. 로도스섬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 높이 뛰어올라 장미꽃처럼 아름답게 피아야 한다. 단, 장미꽃을 취하려면 가시를 견뎌내야 한다. (175쪽)

 

 

* 히말라야의 눈표범

 잡지를 덮기 전에 눈표범의 눈을 뚫어지게 보았다. 문득 저 눈표범의 존재가 나에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세기말적 계시처럼 느껴진다. 결코 저 눈표범과 인간은 공존할 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어쩌면 저 눈표범이 스스로 히말라야를 버리는 날과 인간이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날이 겹칠지도 모른다.  (3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