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모독冒瀆 / 박완서

칠부능선 2021. 1. 11. 00:10

올해가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년이다. 

그가 65세였던 1996년에 티베트와 네팔을 다녀와서 쓴 책을 다시 꺼내서 읽었다. 

첫장에 '98. 11.6 盧貞淑' 이라고 써있다. 그때는 새책을 사면 이런 표시를 했다.

지금은 가능하면 흔적없이 본다. 밑줄 치고 싶은 부분엔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다시 보기도 하지만,

깨끗하게 보고 필요할만한 사람한테 준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 나는 티베트, 네팔을 가보지 않았다. 막연한 동경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2006년, 이렇게 여행 년도를 기억하는 것은 딸의 결혼식 날짜를 받아놓고, 딸과 함께 인도를 거쳐 네팔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거금을 들이며 이것도 혼수라고 뻥쳤다) 그때 바로 가까이서 티벳을 바라보고만 왔다. 

네팔을 혜초여행사에서 안내 받은 것은 나와 같은데, 그때 인도를 거쳐서 갔기에 나는 네팔의 첫인상은 '참으로 순박하다' 고 생각했는데, 박완서 선생이 티벳을 돌아 네팔에 당도한 느낌은 "자본주의 냄새가 물씬난다"고 한다. 이렇게 여행의 앞과 뒤에 이어지는 느낌이 다르다. 

다음엔 나도 티벳을 거쳐서 네팔에 다시 가보고 싶기도 하다.

소나기와 함께 회오리 바람이 휘몰아쳐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포카라에 가서 한달 정도 있을수 있음 좋겠다.

 

 

                                       겉옷을 벗기니 속이 더 맘에 든다. 하드 장정이지만 손에 안긴다.

 

* 이곳은 티베트 민족의 종교와 역사와 문화와 기술이 총집결된 박물관이기도 하다. 그들이 민족적인 열정을 바쳐 증거한, 그들 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이 있었기에 중국에 의해 주권을 빼앗기고 달라이 라마가 망명한 지 40년이나 되는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티베트를 중국의 서장성西臧省이라고 생각하려들지 않는다. 여기 떠나오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티베트 간다고 으시댓지 중국 간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 또한 거긴 여행하기 힘든 나라라고 하던데, 하면서 주권 국가 취급을 했다. 높고 독특한 정신 문화는 강력한 군사력 이상으로 정복하기 힘들다는 본보기처럼 티베트는 고독하고 의연하게 여기 존재하고 있다.  (58쪽) 

                                                                

* 라싸에서 장채까지 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길은 해발 5,200m에 위치한 얌드록초 호수를 낀 길이다. ....

불모의 갈색 봉우리들이 주위를 에워싼 이 호수의 푸르름은 귀기鬼氣마저 돈다. 그러나 아무리 상품의 터키석도 이 호수 빛깔에 도달했다고는 차마 못하리라. 

  우리는 말을 잃고 숨을 죽였다. 호숫가에서 잠시 쉴 때였다. 소설도 잘 쓰지만 시인이기도 한 김영헌이 마침내 벌떡 일어나더니 호수를 향해 일갈을 했다. 글로 옮기기 민망한 쌍욕이었는데 가슴이 후련해지는 절창이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111쪽)

 

 시인의 일갈 - 차마 옮기지 못하는 이 쌍욕이 무엇이었을까. 

 

 

 

*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보고 나면 하나도 못 건지는 수가 있는데 이 사원을 나오면서 그래도 하나 새롭게 깨달은 게 있었다. 그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줄창 입에 달고 있다시피 한 진언 '옴마니반메홈'에 대해서인데, 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 된다기에 식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과 광물에서 아름다운 것의 이름을 줄창 입에 달고 있음으로써 현실의 구질구질함을 극복하는 한편, 아름다눈 상상력으로 정신을 정화하는 힘을 얻고 싶은 갈망이 만들어 낸 주물이려니 했다. 

 그러나 그 보다는 훨씬 뜻이 깊다는 걸 어떤 벽화 앞에서 문득 깨달을 수가 있었는데, 그건 티베트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 합환상이었다. (129쪽) 

 

 

* 산간 고원에서 야크 가죽 탠트를 치고, 야크의 허파로 만든 풍구로 야크 똥 연료에다 풍구질을 하는 목동은 결코 구걸하지 않는다. 때에 찌들어 갑옷같이 된 옷을 입고 머리에는 야크 머리보다 훨씬 간소한 장식을 하고 야크 뼈와 터키석으로 만든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친 목동은 수줍고 당당하고 섹시하기조차 하다. 때의 갑옷의 섹시함은 애인의 잇사이에 낀 고춧가루만 봐도 정 떨어지고 마는 우리의 얄팍한 감성 그 밑바닥에 남아 있는 야성을 일깨우는 원초적 숫컷스러움이다. (159쪽)  

      

 

 * 뚱뚱한 식당주인 나무랄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잔반을 개죽처럼 섞어서 문앞의 구걸하는 사람에게 주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 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 주오. 랏채를 떠나면서 남길 말은 그 한 마디밖에 없었다.

 (212쪽)

 

- 모독이라는 제목을 떠올리면 그 순정한 나라, 티벳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것으로 족해야 할 것만 같다. 

 

 

* 우리가 에베레스트라고 부르는 히말라야 최고봉을 여기서는 초모랑마라고 한다. ... 초마랑마는 최고봉이라는 게 발견되기 전에도 최고봉이었고 이름이 붙여지기 전부터 거기 있었다. 에베레스느는 칠성이가 미국 가서 리차드가 된 것 같은 이름이니 본고장에서는 초모랑마라고 불러주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 (224쪽)

 

 

 * 차트완 국립공원

  나는 새보다는 나무끼리의 약육강식이 더 흥미있었다. 밀림에서는 크고 잘생긴 나무들이 강자가 아니라 다른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덩쿨나무가 강자였다. 남을 칭칭 감고 올라가면서 그 나무가 고사할 때까지 사정없이 진을 빨다가 그 나무가 말라죽으면 다시 그 옆의 나무로 옮겨간다. 한 덩쿨나무가 몇 그루의 거목을 고사시켰는지 그 손서까지 보인다. 그만큼 자라는데 몇 년이나 걸렸을까. 고층 아파트 높이로 자란 나무들도 감겨오는 덩쿨나무한테 당해내지를 못 하고 고사한 흔적들이 여기저기 고스란히 남아 있다. (327쪽) 

 

 *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 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 

 (344쪽)

 

이렇게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