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불안 / 알랭드 보통

칠부능선 2020. 12. 24. 17:44

 

책 띠지는 호객행위다.  '위트 넘치는 철학 에세이' 에 낚였다. 

 

요즘 '불안'이 일상이 되었다.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숫자에 민감해졌다.

더 강화된 거리두기에 이모님 생신모임도 취소되었단다. 서로 다른 시간에 찾아뵙는 걸로. 내참. 

이 책은 2011년에 나와서 1판 36쇄를 찍었고, 2020년 5월에 2판, 9월에 2쇄다.

그러고 보면 '불안'은 늘 가까이 있었던 게다. 

오래 전에 나도 '불안이 신의 기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동안은 무심하게 지낸듯도 하다. 성당을 나가지 않고부터 그런 것 같다.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과 매주 성채를 모시며 각성하는 것의 차이다. 

불안의 정의를 밝히고, 원인과 해법을 제시한다. 

왠지 스며들지가 않느다. 특히 마지막 챕서 '보헤미아'에서 장황한 비교설명이 입안의 마른 콩처럼 겉돌았다. 

 

 

 

*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1651년)에서 개인은 사회의 탄생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이 사회에 합류한 것이고, 보호를 대가로 타고난 권리를 내주기로 동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62쪽)

 

*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근대 사회는 첫 번째 방법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욕망에 줄기차게 부채질을 하여 자신의 가장 뛰어난 성취의 한 부분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다고 여겼지만 우리보다 더 큰 부자가 된 사람과 실제로나 감정적으로나 거리를 두면 된다.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78쪽)

 

*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작품을 통해서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138쪽)

 

* 웃음은 최고의 익살꾼의 손에 쥐어지면 도덕적 목적을 획들하며, 농담은 다른 사람들이 성격과 습관을 바꾸도록 촉구하는 수단이 된다. 농담은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고, 더 공정하고 더 멀쩡한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이다. 새뮤얼 존슨이 말햇듯이 풍자는 "악이나 어리석음을 비난한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존 드라이든의 말을 빌리면, "풍자의 진정함 목적은 악의 교정"이다.  (210쪽)

 

*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247쪽)

 

*기독교 도덕가들은 불안을 달래려면 낙관적인 사람들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최악으로 흘러간다고 강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293쪽)

 

* 집단과 그 전통은 열등하다는 보헤미아의 믿음과 더불어 개인의 우월성에 대한 강조가 나타났으며, 이와 더불어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나타났다. 빋토르 위고는 <에르나니>(1830)의 서문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이제 규칙은 없다. 재능 있는 사람이 개인적 독창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신이 하인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 (345쪽)

 

 

 

띠지를 걷어내니 더 '불안'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