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이별의 무게 / 노정숙

칠부능선 2020. 9. 11. 14:57

이별의 무게 

노정숙

 

 

비오는 일요일 저녁, 한 사람을 생각하며 탄천을 걸었다. 내일이면 그의 육신은 한줌 재가 된다. 육신이 있을 때 마지막까지 열려있는 감각이 청각이기에 망자 곁에서 나쁜 말을 삼가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의 입은 여러 방향에서 나팔을 불고 있다. 대책 없는 언어 테러다. 실상 죽음을 담보해서 얻을 것은 하나도 없다. 죽음 후에도 선업은 회자되고 죽음으로서 악행이 묻힐 수 없고 문제는 계속된다.

그동안 참담하고 황망한 죽음을 많이 보았다. 세상에 나서 꽃봉오리를 터트리지도 못하고 져버린 꽃들, 한순간에 꺾인 곧고 우람한 나무들, 울울창창한 숲이 통째로 타버리기도 했다. 저마다 귀하게 숨탄것들이 제 몫의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스러질 때 참으로 애통했다.

사람의 이름이 고유명사가 되면 그 사람은 우상화되기 쉽다. 노무현과 노회찬의 죽음으로 운동권의 순결주의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봐야 했다. 그들 스스로 인간적인 흠결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였는지 모르지만, 공인으로서 사회에 던진 충격과 많은 사람을 슬픔에 빠뜨린 책임은 벗을 수 없다.

박원순이 세상을 떠났다. 진보적인 인권 변호사, 헌신적인 시민운동가, 서울시장, 이런 너울 속 그는 외로운 한 인간이었나.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미투 지지자였던 그가 성추행혐의로 고소를 받았다. 진실을 가리기도 전에 부끄러움을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일까. 남모르는 절박한 무엇이 있었을까. 공인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다만 과로사가 아닐까.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죽음에 이르는 열성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인의예지를 외치던 공자도 소인배와 여자 다루는 게 제일 어렵다고 했다. 가까이하면 공손하지 못하고 멀리하면 원한을 산다고 했다. 이는 일찍이 공자가 이혼을 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소인배와 여자를 온전한 인격체로 보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오래전부터 모든 죽음에는 타살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어항에 열대어가 배를 뒤집고 떠있는 것을 보며 나의 부주의를 탓했고, 베란다에 죽어가는 화분들을 보며 내 게으름을 반성했다. 죽음에 낭만이나 환상을 더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보다 스무 해를 더 산 지금은 나 자신의 죽음을 느닷없이 맞닥뜨린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모든 관계에서 마음길 눈길이 멀어지면 죽음이 끼어든다.

이별의 무게는 삶의 편력으로 결정된다. 열정을 다해 누리고, 가족, 친구, 이웃과 나누고 즐긴 것이 이력이다. 지나간 사람의 공과를 가리는 기준은 마음을 나누고 정을 쌓은 생전의 행적이다. 주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평판이 망자의 비석이다.

눈부시게 발전한 서울, 그 휘황함 속에 병든 이웃이 얼마나 많은가. 경제가 급성장해서 국민소득이 높아졌는데도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오래 기록하고 있다. 그도 고민했을 이 불명예스러운 수치에 본인이 숫자를 하나 더 보태게 되리라는 건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하는 걸까.

사회적 통합과 규제를 자살의 원인으로 본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건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자살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적 통합이 승할 때는 이타적 자살이 많고, 사회적 규범에 혼돈이 올 때는 아노미적 자살, 소외가 심할 때 이기적 자살을 하며, 규제가 강할 때 숙명적 자살을 한다고 세분했다.

이런 분류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살의 종국은 이기적이다. 이타적 자살도 사실상 가족, 조직이나 이해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숙명적 자살도 결국 자신에 대한 변명,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다. 잘못이 있으면 사회적· 법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게 순리다. 특히 철면피가 많은 동네에서의 면피성 자살은 우리를 비통에 몰아넣는다.

우리는 모든 죽음의 타살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기서 가벼워지기 위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곳으로 자원봉사를 나서고, 타인을 위해서 가진 것을 나누고, 불편한 마스크를 챙긴다. 이런 행동은 모든 죽음 앞에서 느껴야 하는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방안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흑백논리로 나누지 않고 나와 다른 가치를 틀렸다고 몰아붙이지 않는 사람들 -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바로 인정하고, 결코 빛나지 않는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이 세상의 버팀목이다. 이들이 이루고 있는 침묵의 연대가 든든하다.

서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믿음을 쌓아가는 게 인연이다. 한때 눈 맞추며 따듯했던 마음들을 불러온다. 언제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와 인연된 모든 이들과 깃털 같은 이별을 기대한다.

빗속에 진홍빛으로 서 있는 나리꽃마저 처량하다. 돌연한 이별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수필 오디세이> 2020 가을호 (통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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