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 수필>
의문과 확신 사이
노정숙
인간이 죽음을 마무리하는 방법은 동물보다 못하다는 걸, 아무리 좋은 소리도 누가 어디서 말하느냐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진다는 걸 말하며 철학자는 묻는다.
“무슨 말인지 알죠?”
사랑이 행복이고 이별이 불행이라는 공식이 개소리라는 걸, 짝사랑은 스토킹이고 미저리라는 걸, 사랑이 구속이고 이별이 자유일 수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자꾸 묻는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시죠?”
거대한 뿌리는 진창에서 뿌리를 내려야 가지를 뻗을 수 있다는 걸, 꽃은 지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말로 한 고통은 고통이 아닌 걸, 글로 쓴 고통도 이미 고통이 아니라는 걸 말하며 또 확인한다.
“무슨 소린지 아시겠죠?”
그럼 알다마다. 확신에 찬 철학자의 돌직구 ‘죽는다’를 ‘디진다’고 말해도, 다 안다.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연식이지만, 나도 나를 직면하기 위해 ‘벽 타기’를 해야 할까. 여전히 몸과 맘이 엇박자인걸 보니 철학이 들기는 글렀다.
「현대수필」 2020 겨울호 통권 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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