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이다.
프롤로그
<인간 혐오> 대장금의 한상궁 마마님 말을 인용한다.
"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 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문학적 감수성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법관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심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결국 인간의 여러 특성 중 범주화할 수 있는 보편성을 추출해서 보여준다. 문학은 그보다 훨씬 풍부하게
인간의 개별성, 예의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후자에 대한 이해 내지 상상력 없이 이루어지는 재판은
침대 길에 맞춰 인간의 신체를 절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략할 수 있다.
* 법관들도 말에 대해 주의하고 반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강의를 듣는다. 그때 배운 것이 있다.
데이의 <세 황금문>이다. 누구나 말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인가?'
.... 법조인들의 말은 더더욱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다.
* 기각결정문은 판결처럼 법정에서 선고하는 것도 아니고 우편으로 보내게 되어 있다.
(5.18 때 항소심 진행중 옥중에서 사망한 자식을 잃은 88세 아버지가 신청한 재심사건) ...
재판관인 내가 직접 유족들께 전화해 내용을 설명드렸다. 최대한 상세히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자괴감이 들었다.
.... 몇 줄짜리 형식적인 기각결정문을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내고 마는 것이 법 규정대로의 처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국가가 갖출 예의 말이다.
* 다수의 의견이라고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만약 다수의 의견이 늘 옳다면 인류는 아직도 천동설을 믿고 잔인한
사적 보복을 허용하며 인종 간 결혼은 금지하고 성적 소수자를 박해하고 있을 않을까. 다수결의 원칙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에서 다수에 대한 정교한 견제장치도 같이 마련하고 있는 이유다. .....
사회 구성원들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폭넓게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내면화하려면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잘못된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
에필로그 '우리가 잃은 것들'은 단원고 2학년 4반 빈하용 전시회에 들어가게 된다.
우연히 서촌을 걷다 발견한 것이다.
*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한 개인으로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전쟁같이 힘든 세상이다. ....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고통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아이가 다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
남도록 지키기 위해, 그런 개인들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배려해주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다.
또 그렇기에 얼마나 귀한 일인가.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이 겹쳐진다.
곧은 정신과 마음이 따뜻한 이 <개인주의자>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