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일산에서 초미세먼지를 마시며 김훈이 쓴 글을
2019년 가을, 청명한 하늘을 보며 서울공항 상공에서 하는 에어쇼의 굉음을 들으며, 그의 연필자국을 따라 467쪽을 읽었다.
초반부에 내 취향에 혹하는 글들이 많고 중반부 넘어가면서 이순신을 다시 생각하고, 군대이야기와 축구이야기가 나온다.
어쩔 수 없는 '꼰대'임을 당당히 드러낸다.
그의 말대로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 하찮고 사소한 것,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한 말이다.
그의 염려와 달리 그는 말로써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이국종의 <골든아워> 1, 2권을 읽고 쓴 글에서 만난 정경원, 깊이 고개숙인다. 이국종도 잘 살았다. 정경원이 있으니.
'늙음'을 인식하는 건 나이 70의 문제가 아니고 자의식의 문제다. 둔해오는 감각을 인정하고 순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다.
나는 그의 늙음에 동참하며 초록색으로 그의 말을 옮긴다.
이 지난한 작업의 흔적,
내가, 아니 대다수 글을 쓰는 우리가 잊고자 하는 흔적을 버젓이 책 표지로 썼다.
* 너무 늦기는 했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자신을 옥죄던 자의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나는 흐리멍덩해지고 또 편안해진다.
이것은 늙기의 기쁨이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 보다는 형용사의 세계이다. 날이 저물어서 빛이 물러서고 시간의 밀도가
엷어지는 저녁 무렵의 자유는 서늘하다. 이 시간들은 내가 사는 동네, 일산 한강 하구의 썰물과도 같다.
이 흐린 시야 속에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연히 드러난다. 자의식이 물러서야 세상이 보이는데, 이때 보이는 것은
처음 보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늘 보던 것들의 새로움이다. 너무 늦었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다.
이것은 '본다'가 아니라 '보인다'의 세계이다.
*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중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 나는 리듬이 빠른 음악을 들어도 몸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늙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몸과 마음 사이에 직접성이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
나는 사실, 서태지나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음악으로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춤동작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들의
춤은 고도로 기획되고 훈련되어 있었다. 그들의 춤은 빛처럼 퍼져나가면서 부서지고 반짝였다. 그들은 '인생론'에서 벗어나 있었고,
기쁨과 힘으로 가득차있었다. 음악은 몸이 하는 일이고, 음악과 몸은 구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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