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책 중독인가 싶기도 했다. 당장 코 앞에 마감이 다가오는데 쓰는 거 보다 읽는 게 더 즐거우니...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에서 역시 '책 읽는 뇌'에 주목한다.
두 달 만에 5쇄를 찍고, 이 책에 대한 찬사가 줄줄이 이어지지만 그리 녹록한 내용은 아니다.
젊은 부모가 읽어야 할 책인데, 바쁜 딸을 생각하니 이런 책을 진득하게 읽어낼 것 같지 않다. ㅋ 태경이를 직접 주면 모를까.
10세 이전에 아이와 눈 맞추며 책을 읽어주면 기적이 나타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우리 아이들 어릴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다. 한글 알아갈 무렵에 곳곳에 시를 적어 붙여놓고 같이 외우기도 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좋은 대학을 못 갔어도, 돈이 많지 않아도 마음으로 부자라며 기죽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책읽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는 책읽기에 적당한 구조가 아니고 훈련에 의해서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장석주)
알베르토 망겔과 보르헤스의 피그말리온 서점에서의 조우도 각별하다. 후에 대독자代讀者가 된다.
그의 아름다운 저서 <독서의 역사>에서 깊이 읽기의 핵심적 요소를 '읽기는 누적되는 것' 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워렌 버핏의 충고에 뜨끔해진다.
'달력을 빈칸으로 채우라' - "시간은 누구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관조적 삶에서 페스티나 렌테 - '천천히 서두르기' 혹은 '천천히 재촉하기'에서
'가능하면 빠르게, 필요하면 느리게' 까지. 칼비노의 말에도 끄덕끄덕~~
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속도에서 일단 뒤떨어진다.
디지털 매체의 특성에 의해 책 읽는 뇌의 높은 가소성이 위축될 위기를 맞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전환점으로
삶의 진정한 척도를 정해야 한다.
다윈이 우리 종의 미래에 대해 희망한 것처럼 우리는 더없이 정교한 읽는 뇌 회로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책에 수많은 인용문이 등장한다.
* 인간이 자연의 선물로 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으로 창조한 수많은 세계 중에 책의 세계가 가장 위대하다.
모든 어린아이는 자신의 첫 글자를 석판에 휘갈기고 처음으로 글을 읽으면서 인공적이고 가장 복잡한 세계로 진입한다.
이 세계의 법과 규칙을 완전히 알고 완벽하게 실행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어가 없다면,
쓰기가 없다면, 책이 없다면 역사도 없을 것이고 인간성도 없을 것이다.
- 헤세 <책의 마법> 중에서
* 좋은 사회에는 세 가지 삶이 있다. 하나는 지식과 생산의 삶, 다른 하나는
여가에 관한 그리스인 특유의 이해 속에서 나오는 즐기는 삶, 마지막은 관조의 삶이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중에서
'좋은 독자'도 마찬가지다. 좋은 독자는 첫 번째 삶으로 정보를 모으고 지식을 얻는 것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삶에 묻혀 산다.
두 번째 삶인 즐거움을 위한 독서는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량, 심심풀이를 위해서든 몰입에서
오는 강렬한 즐거움을 위해서든, 다른 삶에 관한 이야기와 새로 발견된 신비한 외계 행성에 관한 글,
숨 막힐 듯이 아름다운 시를 읽는다. ....
좋은 독자의 세 번째 삶은 읽기의 절정이자 앞서 말한 두 삶의 종착지다. 바로 관조적 독서의 삶이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읽고 있는 장르가 무엇이든 완전히 보이지 않는 개인적인 영역, 즉 우리의 사적인 '해저'로 진입한다. 거기서 모든 종류의 인간
존재를 관조하고 우주를 숙고한다. 우주의 진정한 신비는 우리의 어떤 상상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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