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숨그네> 헤르타 뮐러

칠부능선 2019. 7. 9. 21:30

 

  끙끙거리며 읽었다.

  책장이 잘 안 넘어가는데도 놓아버릴수가 없다. 읽어내야할 필독서 같은, 모처럼 의무감이 들러붙었다.

 

  <숨그네>는 가라앉아 있던 역사의 한 부분이다.

  역사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눌러두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어이 알려야 할 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이 지난한 작업을 하는 그를 우리는 작가라고 부른다. 1953년생 헤르타 뮐러는 2009년 노벨문학상을 탔다.

  젊은, 아니 어린 남자의 수용소에서의 5년, 인간성이 사라진 참혹한 현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담담하며 뇌수를 파고드는 정면 직시가 아름다우며 서늘하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간다.'

  나는 이 첫문장에서 내가 가진 것 모두을 가지고 떠날 수 없는 '죽음'을  떠올렸다.

  주인공은 당시 감옥에 가거나  처형당하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혼자 뜨는 달처럼 하룻밤 사이에 시멘트가 사라지듯 벽도 의식하지 못하게 자란다. 사람들은 명령에 휘둘리고,

  뭔가를 시작하고, 쫒겨난다. 따귀를 맞고, 발길질을 당한다. 속은 완고하며 우울해지고, 겉은 개처럼 비굴하며 비열해진다.

  시멘트는 잇몸을 망가뜨린다. 입을 벌리면 입술이 시멘트 포대처럼 찢어진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복종한다.

  불신은 담보다 높이 자란다.

 

  내 생각에 배고픈 상태에서 맹목과 주시는 같은 말이다. 맹목적인 배고픔은 음식을 가장 잘 본다.

  은밀한 배고픔과 공공연한 배고픔이 있듯, 소리가 없는 배고픔의 단어들과 소리가 큰 배고픔의 단어들이 있다.

  배고픔의 단어들, 즉 먹는 단어들이 대화를 지배할 때도 우리는 혼자다. 저마다 자기 단어들을 먹는다.  .....

  주식인 양배추수프는 몸에서 살을, 머리에서 이성을 앗아가는 주범이었다. 배고픈 천사는 발작을 일으키듯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배고픔은 여름내 자라는 풀보다, 겨우내 쌓이는 눈보다 빨리 자란다. 평생 자랄 것이 하루 만에 자란다고 할까.

 

  뼈 남자와 뼈 여자가 되어 성별이 사라진 후로는 배고픈 천사와 짝짓기를 했다.

  배고픈 천사는 제가 이미 훔쳐간 살마저도 희롱하며 점점 더 많은 이와 벼룩을 침대로 데려왔다.

 

  뼈와가죽의 시간과 구조바꿈을 뒤로하고, 발레트키, 현금, 먹을 것, 새로 붙은 살과 새 트렁크 안의 새 옷을 걸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처구니없이 풀여났다.

 

  내가 돌아왔을 때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컸고, 집 안에 달갑지 않은 안도감이 퍼졌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살아 있음으로써 그들의 추모 기간을 기만한 것이었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

카프카의 이 명제에 부합하는 작품이라고 안드레아 쾰러는 말했다.

나도 반론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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