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늙은이가 쓴 책을 늙은이가 읽었다. 나는 자꾸만, 기를 쓰고 책을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파머의 글은 책이라기 보다 풍경으로 다가왔다. 해가 기울고 빛이 순해지는 초저녁에 우리 마을 호수공원의 숲은 더 깊고 더 먼 데까지 보인다.
생 로 병 사는 본래 따로따로가 아니고 한 덩어리로 붙어 있어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자리'는 늙은이만의 자리가 아니다.
젊었을 때는 나와 세상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있었다. 이 경계선은 내 자의식의 성벽이었고 그 안쪽이 나의 자아였다. 나는 이 성벽 안쪽에 들어 앉아서, 이 세상을 타자화해가면서 잘난 척했다. 늙으니까 이 경계선이 뭉개져서 나는 흐리멍텅해졌고, 나인지 남인지 희부예졌는데, 이 멍청한 시선으로 나는 나에게서 세상으로 건너가려 한다. 경계선이 뭉개질 때, 늙기는 힘들지만 그 자장자리에서 이것저것이 겨우 보일 때, 나는 혼자서 웃는다. ...'
- 김훈 소설가
김훈의 추천의 글이다.
나도 늙은이쪽에 더 가까우니 느긋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잃을 게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할 뿐이다. 인생에서 공공선을 위해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할 시간이다.'
... 그래서 나는 나이듦과 죽음을 감상에 젖어 낭만화하지 않을 것이다. 나이듦은 특권이요, 죽음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잘 안다.
* 우리는 죽음에 관해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불가피한 것을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 ...
일출과 일몰 사이의 활처럼 휘어진 길을 어떻게 여행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부정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아니면 협력할 것인가?
* "나는 노화라는 중력에 맞서 싸우고 싶진 않아. 그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난 최대한 협력하고 싶어, 저 일몰의 은총과 같은 무엇으로 생을 마감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얼굴과 이마에 주름이 가득하긴 하지만, '늙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산 사람 중 한 명인 것만으로도 사랑스럽거든"
* '레너드 코언이 어느 가사에서 썼듯이, "친구들은 가버렸고 내 머리는 히끗해졌다/ 어릴 때 놀던 곳에서 나는 몸이 쑤신다." 이 모든 것이 진실이며, 처음 몇 단어는 무겁다. 그러나 두 번째 행에 따라오는 웃음은 짐을 덜어준다.
시는 은유를 지렛대 삼아 무거운 것들을 들어올림으로써 짐을 가볍게 해주기도 한다. 아흔세 살 나이에 세상을 뜰 때까지 통찰과 우아함으로 글을 쓴 시인 진 로먼의 작품이 그렇다. 그녀의 시는 나이듦을 생각할 때 종종 엄습해오는 중압감을 다루는 데 도움을 준다.
* 고통은 죽음이 아닌 생명을 가져다주는 무언가로도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 그들의 마음은 부서져 조각난 것이 아니라, 부서져 열린 것이다. 그러니 매일, 삶의 고통과 기쁨을 받아들이면서 마 음을 운동시켜야 한다. 마음을 탄력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 장자는 어떤 사람이 강을 건너는데 자기 배에 빈 배가 와서 부딪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화를 내지 않는다. 그 빈 배가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화를 낼 것이다. 장자는 말한다. "세상이라는 강을 건널 때는 배를 비우라"
* 고독은 사람들과 멀어져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에게서 떨어져 사는 일도 결코 아니다. 고독은 타인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곁에 누가 있든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다.
* 스포츠 작가 레드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타자기 앞에 앉아서 마음을 열기만 하면 된다"
* 여든 살에 다가서며 나는 온전함에 이르는 지름길이란 없음을 안다. 유일한 길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애정 어린 팔로 감싸 안는 것이다. 이기적이되 관대한, 악의적이되 동정적인, 비겁하되 용감한, 기만적이되 신뢰할 수 있는 모습들 말이다. "나는 그 모두다"라고 세상에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 아내 샤론 파머는 내가 쓴 모든 글을 가장 처음 접하고, 예술가의 눈으로 읽어준다. 원고를 어떻게 편집하는지 물어보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세 가지 질문을 해요. 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명료한가? 아름다운가?"
늙음과 글쓰기, 죽음에 이르는 이 책이 요즘 불안한 내게 많은 위안이 되었다.
나이듦이 쇠퇴와 무기력이 아닌, 발견과 참여의 기회를 넓힐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파커 J. 파머의 다른 책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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