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모임이 있었다.
맛난 저녁을 먹고, 진한 대추차도 마시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다.
앗, 내 가방에서 두 권의 책이 나왔다. 한 권씩 받은 책인데, 누군가의 책을 더 넣고 온 것이다.
단톡방에 바로 자수를 하니 다행이 한 샘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니 내 덜랭이 짓을 양해하리라 믿는다. 바로 보내주겠다고 하니 가까운 사람 주라고 한다.
마침 내가 주문해 놓은 책 중에도 그 책이 있어 집에 당도해 있다. 갑자기 세 권이 되었다.
한밤중에 절반 쯤 읽었다.
절반까지는 소사한 일상의 알콩달콩, 위트에 잘 버무렸다.
특별한 친구와 제자의 이야기에는 따듯한 눈길이 스며 저항없이 끄덕인다. 잘 살아온 시간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거의 뒷 부분에 <가슴에 박은 못>은 전에 읽었던 작품인데도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이어서 <노크 좀 해줘요>는 일찍 떠난 형의 묘소를 이장하는 장면이다.
주변의 나무들을 뭉개듯 밀어낸 포크레인 기사가 땅파기를 시작하려던 참이다. 어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 일을 막더니,
"여보! 기사양반 내가 부탁이 있어요. 저 산소 임자가 내 큰아인데 태생이 순하고 얼떠 겁이 많았다오.
한 20년 가까이 편히 있던 곳을 파헤치면 얼마나 놀라겠소. 그러니 파기 전에 저 기계로 동서남북 네 군데를 땅속까지
울리게 쿵쿵쿵 찧어 노크를 좀 해줘요. 그래야 저 애도 맘에 준비를 할 것 아니요? 내 그것때문에 일부러 온 거라우"
가슴이 찌릿하며 주체할 수 없었다. 멍하니 책을 덮고 한참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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