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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추억 / 김수종

칠부능선 2011. 11. 7. 18:44

스티브 잡스의 추억

2011.11.07


김수종

 

우리 시대 가장 창조적인 기업가 스티브 잡스는 죽어서도 깊은 인상을 세상 사람들에게 남기고 있습니다. 생전에 그가 기획했던 전기(傳記)에서, 그리고 그의 누이동생 모나 심슨의 추도사에서 그의 직설적이고 심미적인 인간성을 엿보게 됩니다.

“오 와우(Oh wow), 오 와우, 오 와우.”
스티브 잡스가 숨을 거두기 직전 식구를 쭉 둘러보고 나서 마지막 남긴 세 마디라고 합니다. ‘와우’(wow)는 놀라움 또는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영어 감탄사입니다.
잡스의 누이 동생이자 작가 모나 심슨이 그의 장례식에서 낭독하고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추도문에 적힌 임종 장면입니다.

이 말은 참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될 것 같습니다.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머리 속에 무슨 생각이 스쳤기에 이런 감탄사를 뱉어냈을까요? 아무도 답해줄 사람이 없지만 참 궁금합니다. 죽음의 저쪽 너머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일까요, 아니면 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번개 같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일까요? 그의 인생 역정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죽음 같습니다.
“죽음이 오빠에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오빠가 죽음을 성취했다.”는 모나 심슨의 임종 묘사가 실감납니다.

모나 심슨의 추도문은 문학가로서 잡스를 미화한 측면도 있지만, 가까운 가족만이 전해줄 수 있는 잡스의 인간성을 상상하게 하는 글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하여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든 이래 그는 끊임없는 창의적 발상으로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모나 심슨의 글을 보면 잡스의 창의적 발상의 종착점은 ‘아름다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스탠포드 대학 연설에 보면 초기 컴퓨터의 글씨체까지도 서예의 아름다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모나 심슨은 잡스와의 오랜 만남을 통해 단순함과 아름다움이 그의 심미안(審美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합니다. 신기로운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잡스의 미학적 가치 추구를 누이동생은 다음과 같은 말로 압축합니다.
“유행은 지금 아름다운 것 같으나 나중에 보기 흉하고, 예술 작품은 처음에 보기 싫은 것 같으나 나중에 아름답다.”

잡스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때면 기술과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강조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는 지난 봄 “기술은 교양 및 인문학과 결혼하여 우리 가슴으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해야 한다.”는 말로 세계 젊은이들에게 인문학과 예술의 중요성을 불어넣었습니다.

잡스가 생전에 관여했던 전기 ‘스티브 잡스’가 출판되어 지금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잡스는 IT산업계의 또 한 사람의 기린아 빌 게이츠를 혹평합니다. “게이츠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아무것도 발명한 것이 없기 때문에 기술을 다룰 때보다 자선사업을 하는 지금이 더 편한 것 같다. 그는 뻔뻔하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훔쳤을 뿐이다.”

사실 빌 게이츠를 세계 최고의 부자로 올려놓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첫 OS제품 ‘MS DOS'는 그가 만들어낸 제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개발한 것을 구입해서 히트 친 것입니다. 이를 두고 한 말인지는 모르나, 죽은 자, 그것도 이 시대의 영웅이자 라이벌로부터 이런 극단적인 비판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자존심의 손상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여유 있게 받아 넘겼다고 합니다.
“잡스는 나에게 좋은 말도 많이 하고 험한 말도 많이 했다. 30년간 일하면서 서로를 자극했다. 잡스는 애플 제품을 비싸게 내놓아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자신은 착하고 우리는 나쁘다고 느낀 것이 사실이다. 전혀 개의치 않겠다.”
죽은 자를 상대로 이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기업 세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일세를 풍미했기에 세상 사람이 보기에 두 벤처기업가의 관계는 미묘하게 다가옵니다.
후세에 가서, 20세기 후반의 산업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로 기록될 사람은 틀림없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일 것입니다. 1세기 전 존 록펠러와 헨리 포드가 석유와 자동차 문명을 선도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에 잡스와 게이츠는 IT산업혁명의 영웅들이었습니다.

동갑인 잡스와 게이츠는 성공한 기업가들이지만 성장 배경은 하늘과 땅만큼 달랐습니다. 게이츠는 유복한 백인 부모 밑에서 자란 하버드 자퇴생 출신이지만, 잡스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입양되었고 돈이 없어 대학을 한 학기 다니고 포기했습니다. 둘은 여러 측면에서 적수였습니다.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연설은 역경을 뛰어넘은 자기 내면의 목소리였던 데 비해 게이츠의 하버드 연설은 엘리트 지식인들이 품어야 할 인류애를 강조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은 20세기 후반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IT혁명의 한 단원을 마무리하는 것 같아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아마 잡스로부터 혹평을 받은 빌 게이츠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 있지만, 그들의 창조하고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보며 열광하고 즐거워하던 동시대인들에게 추억의 단편으로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