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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굽는 사람 / 임철순

칠부능선 2011. 7. 1. 09:06

 

고기를 굽는 사람

2011.07.01

임철순

 


혼자서 고기를 구워먹는 식당이 일본에 등장했다는 방송 보도를 한 달쯤 전에 보았습니다. 도쿄(東京) 우에노(上野)에 문을 연 ひとり(히토리ㆍ나 혼자)라는 식당은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 고깃집입니다. 이 식당에는 높이 1.4m, 가로 70cm, 세로 60cm 크기의 독서실 칸막이 책상 같은 탁자가 25개 설치돼 있습니다.

손님들은 1인분에 400엔 정도 하는 갈비를 혼자서 구워 먹고 갑니다. 이용자는 젊은 층에서 중년층까지 다양하지만, 특히 여성이 많습니다. 혼자서 고기를 먹고 싶어도 갈 만한 식당이 없었는데 남 눈치 보지 않고 실컷 고기를 먹을 수 있어 좋다는 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합니다. 식당 안을 돌아다녀 봐야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역시 일본인들답구나’, ‘그런데 무슨 청승으로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식당이 생기고 있다는 신문 기사가 며칠 전에 나왔습니다. 아직은 일본처럼 칸막이 시설을 완벽하게 한 곳은 흔하지 않지만, 혼자 온 사람들이 나란히 늘어앉아 남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할 수 있게 1인용 좌석을 놓은 곳은 많다고 합니다. 몇 년 전부터 혼자 오는 손님들이 늘어나 이런 좌석을 설치하게 됐다니 서울에도 곧 ‘칸막이 독서실 식당’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식당이 생긴다 해도 찾아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평소 고기를 즐겨 먹는 편도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어울려 즐겁게 떠들고 술 한 잔 하면서 먹는 게 좋지 몰래 숨어서 나쁜 짓 하듯 혼자서 젓가락 들고 호비작거리는 건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식당에 갔다가 혼자 고기를 먹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걸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사실 고기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지금도 좀 조심하는 편입니다. 고기를 무서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배부르게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고기를 많이 먹어보지 못한 탓이겠지만, 좀 아껴 먹고 남기고 그래야만 안심이 되곤 합니다. 중학교 때 서울로 아버지를 찾아왔다가 친척집에서 불고기라는 걸 난생 처음 먹던 날, 더 먹으라고 권하는 친척 아주머니에게 나는 마음과 달리 책에서 배운 대로 사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곁에 있던 아버지가 “거, 애가 싫다는데 왜 자꾸 권해요?”하고 퉁명스럽게 말렸습니다. 어쩌다 불고기를 먹을 때면 지금도 그때 생각이 더러 납니다. 아들의 마음을 모르는 아버지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정말 야속하고 서러웠습니다.

내가 고기를 많이 먹은 것은 신문사에 들어와 사회부에서 수습을 할 때입니다. 선배들은 밤마다 이곳저곳 끌고 다니며 술과 고기를 질리도록 사주었고, 고기를 잘 먹는 놈이 일도 잘한다며 이뻐했습니다. 나는 그때에도 음식을 씹는 게 싫어서 고기를 잘 먹지 않거나 깨작거리는 정도였지만, 어쨌든 그때가 태어난 뒤 처음으로 고기를 많이 먹은 시절이었습니다. 고기가 맛있다는 것도 비로소 좀 알게 됐습니다.

선배들은 나와 같은 쑥맥을 딱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기를 맛있게 잘 먹지도 못하는 데다 구울 줄도 몰랐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선배가 집게로 고기를 뒤집어 구워 놓으면 호르륵 먹어버리곤 하던 동기 때문에 함께 혼이 난 일도 있습니다. 원래 돼지고기는 불김만 쏘이면 먹어도 된다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고기를 구울 줄은 모르고 먹기만 하는 건 얌체짓인 게 분명합니다.

작은 업체를 운영하는 내 친구는 직원들과 고기를 함께 먹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전과 다름없이 고깃집에서 전 직원 회식을 할 때, 그는 전과 다름없이 고기를 구웠습니다. 그걸 본 남자 직원이 “제가 할게요.”하며 집게와 가위를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직원이 “사장님이 하시게 해. 사장님 고기 잘 구워.” 그러더랍니다. 그는 기가 막혔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고기를 구워 접시에 담아 주기까지 했다면서 받아먹을 줄만 아는 요즘 젊은이들을 흉보았습니다. “그 애들은 내가 고기를 굽는 게 좋아서 그러는 줄 아나 봐” 하는 말도 했습니다.

내가 아는 한 법조인은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언제나 맨 구석 자리에 벽에 기대고 따개비처럼 붙어 앉습니다. 술도 잘 안 마시고, 밥값을 내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든 남들을 위해서든 고기를 구워야겠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반찬그릇을 옮겨 주는 법도 없고, 수젓가락을 놓아 주는 법도 없고, 컵에 물을 따라 주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남이 고기를 구워 놓으면 아무 생각 없이, 으레 당연한 듯이 집어 먹기만 합니다. 그렇다고 고기를 탐하거나 맛있게 잘 먹는 것도 아닙니다. 몇 번을 살펴봐도 언제나 하는 행동이 똑같습니다. 남을 섬길 줄 모르고 늘 대접만 받으며 살아온 탓일 것입니다.

고기는 혼자 먹으려 하지 말고, 남이 구워놓은 걸 먹으려만 하지 말고, 남들을 위해서 구울 줄 알아야 합니다. 서투른 솜씨로라도 구운 고기를 가위로 썰어 남들에게 나눠줄 줄 아는 사람은 고기 맛과, 고기를 함께 먹는 의미을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고기를 함께 먹을 만합니다.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사람은 고기 값만 더 나오게 하지 말고 이제부터 혼자 먹는 식당을 찾아가는 게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