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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꿈 / 박완서

칠부능선 2011. 1. 25. 21:54

 

 

 시인의 꿈

 박완서

 

 

  길이란 길은 모조리 포장되고 집이란 집은 모조리 아파트로 변한 아주 살기 좋은 도시가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얼음판처럼 매끄럽고,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한 아파트 광장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낡은 자동차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바퀴는 없었습니다. 작은 유리창이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소년은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에는 작은 침대와 몇 권의 책이 있고,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깡통에 든 더러운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속에서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년은 그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리창을 통해 소년과 할아버지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짓하며 웃었습니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웃음이 매우 보기 좋다고 생각했지만 도망쳤습니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소년은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자기가 본 것을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고층 아파트의 창으로 소년이 가리키는 곳을 내다보고 소년의 말이 아주 허황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이웃집을 돌면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것은 아주 기괴한 소문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사람이 산다는 건 고사하고 그 깨끗한 곳에 그런 게 갑자기 생겼다는 것만도 이상했습니다.

  이 도시에선 사람은 모조리 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개나 새 같은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은 지가 오래됩니다. 그렇다고 이 도시에 동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동물은 동물원에 수용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차같이 생긴 것 속에 사람이건 짐승이건 목숨 있는 것이 살고 있다는 것은 기괴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소문을 들은 몇 사람의 어른이 그곳에 가 보고 왔습니다. 소년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니란 게 증명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나이 지긋한 부인이 무릎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이제야 생각납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이 도시가 지금처럼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저런 것이 이 도시 변두리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그것은 무허가 판잣집이라는 겁니다. 무허가 판잣집은 그 시절 이 도시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하나님 맙소사! 그것이 이 좋은 세상에 다시 부활을 하다니.”

  “부인, 진정하십시오. 우린 지금 부인의 지혜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나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제발, 부인.”

  누군가가 그 부인에게 진심으로 애걸했습니다.

  “그건 우리 힘으론 안 됩니다. 시청에서나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청에서 불도저를 갖고 나와 밀어 버리면 됩니다. 여러 채의 무허가 판잣집도 잠깐 사이에 밀어 버렸으니까 저까짓 한 채쯤은 문제없을 겁니다.”

  근심에 잠겼던 여러 사람들은 비로소 안심을 하고 시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시청 직원은 시민의 말을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한두 사람도 아닌 여러 사람이 전화통에다 대고 와글와글 얘기를 하자, 그제야 곧 조사단을 내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조사단이 나와 과연 무허가 판잣집이 있다는 것과 그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시청으로부터의 회답은 비관적이었습니다. 시청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무허가 판잣집을 없앨 수 있는 법도, 불도저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입니다. 무허가 판잣집이란 것이 이 도시에서 없어진 지가 벌써 몇 십 년째인데 그런 법이 뭣하러 여태까지 남아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다시 모여 와글와글 의논을 했습니다.

  누군가가 그건 곧 저절로 없어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노인네니까, 곧 죽게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문제는 판잣집이 아니라 거기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만 없다면 그까짓 작은 집은 폐차장에 갖다 버리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래서 보기 싫은 판잣집을 없애는 일은 노인이 죽는 날까지 미루기로 여럿이 합의를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판잣집 때문에 놀라고 떠들었을 때와는 딴판으로 곧 그 일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소년만은 가끔 그 판잣집을 기웃거려 봤습니다. 대개는 비어 있었습니다. 비어 있을 적에도 열쇠가 채워져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속엔 누가 도둑질해 가고 싶을 만한 물건이라곤 없었으니까요.

  어느 날 소년은 몰래 그 판잣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몰래라는 것은 할아버지 몰래가 아니라,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몰래라는 소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루빨리 없어져 주기를 바라는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나쁜 짓 같아, 될 수 있으면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판잣집 속은 창으로 엿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구질구질했지만 이상하도록 아늑했습니다. 침대의 모포는 털이 다 빠진 낡은 것이었지만 부드럽고 부숭부숭했고, 스프링이 망가져 내려앉은 침대는 할아버지 몸의 모양대로 움푹 들어가 있어 소년의 몸을 정답게 받아들였습니다. 소년은 요람에 누워 가만가만 흔들리던 어릴 적처럼 편안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머리맡에는 나무판자에 벽돌을 괴어 만든 선반이 있고, 선반에는 책과 그릇과 색종이로 접은 새와 짐승과 꽃들이 아무렇게나 섞여 있었습니다. 소년은 침대에 누워 이런 것들을 보며 이런 방에서 살아 보았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은 넓고 잘 꾸며진 자기의 방을 가지고 있고, 또 엄마 아빠의 방과 응접실과 서재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소년은 또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어 친구의 방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소년은 또 가끔 엄마 아빠와 함께 친척 집을 방문하는 일도 있어 친척들의 방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들은 한결같이 비슷했기 때문에 소년은 방이란 다 그렇고 그런 거란 생각밖엔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소년은 손을 뻗어 선반의 책을 한 권 꺼내 펼쳤습니다. 책은 그림책이었습니다. 공작새보다 더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곤충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소년은 학교에서 곤충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 적은 없습니다. 사람 외에 살아 있는 짐승의 대부분은 동물원에 가면 볼 수 있었지만 곤충만은 왠지 동물원에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학교에서 곤충을 사람에게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 두 가지로 나누어 배웠기 때문에 많은 곤충의 이름을 외워 두었지만 곤충은 두 종류밖에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책 속에는 수백 수천 가지의 곤충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각기 제 나름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황홀하게 빛깔 고운 날개를 가진 곤충도 있고, 오색이 찬란한 딱지를 가진 곤충도 있고, 엄마의 속치마 레이스보다도 훨씬 섬세한 날개를 가진 곤충, 징그러운 곤충, 용감해 보이는 곤충……. 소년은 그 많은 곤충이 하늘을 나는 광경을 그리며 가슴을 두근댔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에 할아버지가 들어와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이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우리나라에선 이제 아무 데서도 그걸 볼 수 없을걸. 우리나라보다 못살고 우리나라보다 덜 문명화된 나라에나 남아 있으려나 몰라.”

  할아버지가 슬픈 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이것들은 사람들이 잘사는 것과 문명을 싫어하는군요. 그래서 피해 달아났군요?”

  “아니지, 그것들은 아름답지만 지혜가 없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알고 있는 것과 조금만 어긋난 일이 생기면 살아남질 못한단다. 피해 달아난 게 아니라 없어진 거지. 사람들이 잘 산다는 것 중에는 땅이란 땅을 시골의 농장만 남기고 모조리 시멘트로 포장을 하는 일도 포함되는데, 이 아름다운 것들은 대개 날개를 달기 전 애벌레 시절을 부드러운 흙 속에서 보낸단다. 목청이 좋은 매미라는 곤충은 십칠 년 동안이나 애벌레로 땅속에서 보내는 수도 있단다. 생각해 봐라. 이십 년 가까이 깜깜한 땅속에서 살다가 마침내 날개가 돋아나 몇 주일 동안이나마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날고 노래 부르기 위해 기어 나오려는데, 땅엔 두껍디두꺼운 천장이 생겨 있을 때의 매미의 딱한 처지를, 또 문명이라는 것도 그렇단다. 문명은 이 세상의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종류와 수효가 많은 곤충을 두 가지로 나누었지.”

  “그건 저도 알아요. 사람들에게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이죠.”

  소년은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맞았다. 그러나 정작 문명이 한 일은 그다음 일이란다. 문명은 사람에게 해로운 곤충을 닥치는 대로 죽였지. 그러다 보니 이로운 곤충까지 저절로 그 모습이 사라져 갔다. 사람은 사람 본위로 곤충을 두 패로 편을 갈랐는데, 저희끼리는 그게 아니어서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신비롭게 서로 해치며 도우며 잡아먹으며 잡아먹히며 어울려서 살았던 것이지.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해로운 곤충을 멸종시키려고 한 노릇이 결과적으론 가장 이로운 곤충의 먹이를 없애는 일이 되고, 그 일이 자꾸만 일어나면서 곤충 세계의 조화는 깨어지고 말았단다. 문명이 해친 것은 곤충이 아니라 곤충의 조화였고, 조화는 바로 곤충계의 목숨이었으니 곤충이 멸종될 수밖에…….”

  “할아버지, 그래도 우린 모두 이렇게 잘살잖아요. 곤충의 도움 없이도 말예요.”

  “곤충이 없어지고 나서 바람이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만 살아남고, 벌과 나비가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은 차츰 자취를 감추었단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금도 근심하지 않고 그런 식물이 자라던 자리에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들어, 그런 식물이 아직도 살아남은 나라에 팔아서 그런 식물의 열매를 사 먹기 시작했단다. 근심할 건 아무것도 없었지. 사람은 곤충보다 위대하니까. 돈으로 못 사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아이들이 나비의 아름다움에 홀려 온종일 푸른 초원을 헤맨다든가. 우거진 녹음 아래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 꿈을 꾼다든가, 벌이 윙윙대는 장미 밭에서 한 마리 벌이 되어 본 적이 없이 어른이 되는 일을 근심하고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느니라. 그건 할아버지가 아주 젊었을 때의 일이고, 할아버지도 그걸 슬퍼한 사람 중의 하나였지.”

  “할아버지는 그때 무슨 일을 하셨는데요.”

  “할아버지는 그때 시인이었단다. 아름다운 노래를 많이 지었더랬지.”

  “그럼, ‘솔직히 말해서 벙글콘은 아이스크림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벙글콘은 맛있습니다.’도 할아버지가 지었나요?”

  “넌 그것 말고 아는 노래가 또 없냐?”

  “왜 없어요. ‘샴푸는 비단결 샴푸, 엄마의 좋은 친구 비단결 샴푸, 비단결 샴푸, 노래하며 샴푸하자 비단결, 라라라라 비단결,’  ‘오늘도 만나 카레로 할까요? 달콤하기가 그럴 수 없어요. 매콤하기가 그럴 수 없어요. 만나 카레’ 그리고…….”

  “아, 그만해라. 시가 없어졌구나. 하긴 시인이 없어졌으니까.”

  “시인은 왜 없어졌나요?”

  “곤충을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의 두 패로 나누듯이 그 때 사람들은 사람이 하는 일도 두 가지로 나누었단다. 사람을 잘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일과 쓸모없는 일로…….”

  “그래서 쓸모없는 일을 하는 사람에겐 약을 뿌려 없앴나요?”

  “예끼 놈, 아무리 장난스런 말이라도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할아버지의 얼굴이 정말로 무서워졌습니다. 소년의 입에서 저절로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것을 금지시켰단다. 그래서 대개의 시인들은 기술자가 됐지. 그래도 끝까지 시를 안 버리려고 한 시인에겐 쓸모 있는 시를 쓰란 명령이 내렸고,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벙글콘은 아이스크림입니다.’라는 노래를 쓴 시인도 생겼고, ‘샴푸는 비단결 샴푸, 엄마의 좋은 친구 비단결’이란 노래를 쓴 시인도 생겨났지. 가장 끝까지 시를 사랑하려고 한 시인일수록 가장 크게 시를 더럽혔다니!”

  할아버지의 얼굴이 저녁 하늘처럼 슬퍼 보였습니다. 소년도 덩달아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할아버지의 말씀을 알아들은 것은 아닙니다.

  “할아버지 한 말씀만 더 여쭤 보겠어요. 그렇지만 아까처럼 화내시진 마셔요.”

  “알았다 말해 보렴 .”

  “시가 정말 쓸모없는 거라면 없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우리 엄마가 아이들한테 제일 많이 하는 잔소리도 ‘쓸모없는 건 제 때 제 때 내버려라.’인걸요.”

  “할아버진 젊은 시절의 능력과 정열을 오로지 시를 위해 바쳐 온 사람이다. 시가 쓸모없는 거라고 정해진 후에도 시를 버리고 딴 일을 가진 바 없고, 시를 안 버린답시고 시를 더럽히는 짓도 하지 않았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위해 자기를 다 바칠 수는 없느니라.”

  “그러니까 할아버진 시가 쓸모 있다는 말씀을 하시고 싶으시군요?”

  “그럼, 그럼, 넌 참 똑똑한 애로구나.”

  할아버지의 얼굴에 처음으로 활짝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얼굴이 참으로 보기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시가 쓸모없는 것 취급을 받았을까요?”

  “무엇에 쓸모 있느냐가 문제였지. 그 시절 사람들은 몸을 잘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잘 살게 하는 데 쓸모 있는 건 무시하려 들었으니까.”

  “그럼 몸이 잘사는 것과 마음이 잘사는 것은 서로 다른 건가요?”

  “암, 다르고말고. 몸이 잘 산다는 건 편안한 것에 길들여지는 거고, 마음이 잘 산다는 건 편안한 것으로부터 놓여나 새로워지는 거고, 몸이 잘 살게 된다는 건 누구나 비슷하게 사는 거지만, 마음이 잘 살게 된다는 건 제각기 제 나름으로 살게 되는 거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시가 없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밖에는.”

  “시가 있었으면 지금보다 살기가 불편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지금보다는 살맛이 있었을 거야.”

  “살맛이 뭔데요? 그것은 초콜릿 맛하고 닮은 건가요? 바나나맛하고 닮은 건가요?”

  “그건 몸으로 본 맛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보는 살맛하고는 비교를 할 수가 없지. 살맛이란, 나야말로 남과 바꿔치기할 수 없는 하나뿐인 나라는 것을 깨닫는 기쁨이고, 남들의 삶도 서로 바꿔치기할 수 없는 각기 제 나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아 아껴 주고 사랑하는 기쁨이란다.”

  “어렵군요. 할아버진 설마 지금부터 그 어려운 걸 하실 생각은 아니겠죠?”

  “실상 나는 너무 늙었다 그래도 해 볼 작정이다.”

  “할아버진 어디에서 오셨나요?”

  “양로원에서 왔다.”

  “저도 양로원에 대해서 알고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장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죠. 저희 할머니도 거기 계시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는데, 우리 아파트보다 더 좋은 곳이에요. 더군다나 이런 판잣집하고는 댈 것도 아니죠. 그런데 시는 이렇게 초라하고 불편한 곳에서만 쓸 수 있나요?”

  “그렇진 않지만 시를 쓰는 마음이 가장 꺼리는 건 몸과 마음이 어떤 틀에 박히는 거지. 시를 쓰는 마음은 무한한 자유를 원하거든. 그래서 우선 양로원이라는 노인들의 틀을 벗어난 거란다.”

  “그럼 시를 쓰셨나요?”

  “아니, 아직 못 썼다. 쓰려면 아직 아직 멀었다.”

  “그러실 거예요 무엇을 쓰려면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어야 하는데, 할아버진 매일매일 돌아다니시니까요.”

  “괜히 돌아다니는 게 아니란다.”

  “알아요. 잡수실 것을 얻으러 다니시죠? 이제부터 책상에 앉아서 시만 쓰셔요. 잡수실 것은 제가 갖다 드릴게요.”

  “아니다, 먹을 걸 얻는 데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이 고장은 살기 좋은 고장인 데다가 거지는 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왜 온종일 집을 비우고 돌아다니셔요?”

  “말을 얻으러 다니지. 시는 말로 쓰지 않니?”

  “말이 그렇게 귀한가요? 얻으러 다니게? 참 이 방엔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없군요. 게다가 할아버진 혼자 사시고……. 이제부터 제가 자주 와서 할아버지 말벗이 되어 드릴게요 그리고 소리는 좋은데 모양이 구식이라 버리게 된 라디오도 한 대 갖다 드리죠."

  "너는 참 착한 아이로구나. 그러나 할아버지가 얻으러 다니는 건 그런 말이 아니란다."

  "그런 말하고 또 다른 말도 있나요?"

  "암, 있고말고. 요새 떠다니는 말은 새로 생긴 물건의 이름하고, 그걸 갖고 싶다는 욕심을 위한 말이 전부지. 그러나 시를 위한 말은 그런 물건에 대한 욕심과는 상관없는 마음의 슬픔, 기쁨, 바람 등을 나타내는 말이란다. 얻으러 다녀 보니 그런 말이 어쩌면 그렇게 귀해졌는지, 이 근처엔 거의 없고 저 변두리평민 아파트 근처에나 조금씩 남아 있는데, 거기도 온종일 헤매야 겨우 한두 마디 얻어 가질 정도로 드물어."

  “그게 언제 모여 시가 되나요?”

  “아직 아직 멀었지만,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걸 읽을까요?”

  “아직 아직 멀었지만, 언젠가는…….”

  “그걸 읽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너는 지금 궁전 아파트에 살지?”

  “궁전 아파트 현관의 신발장은 무슨 빛깔이더라?”

  “모두 상앗빛이에요. 손잡이는 금빛이고요.”

  “지금 궁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상앗빛 신발장을 의심하지 않지? 그러나 시를 읽는 사람이 생기면 그걸 의심하는 사람도 생길 거야. 나는 상앗빛을 좋아하나? 아닌데 나는 노랑을 좋아하는데, 그러면서 어느 날 노란색 페인트를 사다가 신발장을 칠해서 자기만의 신발장을 갖는 사람이 생겨난단 말이다. 물론 파랑 신발장, 빨강 신발장을 갖는 사람도 생겨나지. 그래서 궁전 아파트 신발장이 아닌 제 나름의 신발장을 갖게 되는 거야. 또 어린이 중에서도 어른이 가르쳐 준 놀이 말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는 어린이가 생겨날 테지. 그 어린이는 판판한 아스팔트 밑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그것을 파헤쳐 그 속에 숨은 흙을 보고 말 거야. 그래서 그 속에서 몇 년째 잠자던 강아지풀과 명아주와 조리풀과 토끼풀과 민들레의 씨앗을 눈뜨게 하고, 매미의 마지막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가로수를 향해 날아오르게 할 거야.”

  할아버지의 주름투성이 얼굴이 아이들의 얼굴처럼 더없이 맑아지고 눈은 꿈꾸는 것처럼 한없이 먼 곳을 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이상해요.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까 괜히 가슴이 울렁거려요. 이런 느낌은 처음이에요.”

  “아이야, 고맙다. 할아버지가 이제부터 말을 얻어다 시를 써도 늦지는 않겠구나. 시인의 꿈은 가슴이 울렁거리는 사람과 만나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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