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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녹아들어 있는 고전 『삼국지』/ 황석영

칠부능선 2012. 1. 18. 14:45

 

당대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녹아들어 있는 고전 『삼국지』

                                                                                      황석영

 

『삼국지』의 어느 해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 책의 원래 줄거리는 위 ․ 촉 ․ 오 삼국의 역사를 기록한 진수(陳壽)의 사서에서 출발했다. 이와 같은 역사가의 기록에다 여러 시대에 걸친 민중들의 구전설화와 재담, 연희 ․ 연극 등의 공연예술, 작가 ․ 문인들의 창작이 덧붙여져서 오늘날의 『삼국지』가 이루어진 것이다. 열 중에 일곱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셋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이 나머지 셋이야말로 각 시대를 통해 끈질기게 이어져내려온 민중들의 꿈과 소망이 반영되어 있는 부분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보다 더욱 중요한 역사의식이다.

위(魏)나라를 이어받은 진(晉)나라를 섬긴 진수가 당연히 사서에서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았던 데 비하여, 역사소설 『삼국지[三國志演義]』는 촉한(蜀漢)을 정통으로 삼은 점도 의미심장하다. 당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환관들과 패권적 제후들의 음모와 민중반란 속에서 기울어져가는 한나라의 정통을 세운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반동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대를 떠나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되고 구축된 정통론이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내가 1974년 대하역사소설 『장길산』을 시작하면서 ‘역사소설의 의의는 소설에 그려진 시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어느 시대에 썼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임꺽정』이 일제시대에 나왔다면 『장길산』은 분단시대에 나온 것이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는 작가의 글을 읽는 당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오늘날의 원본이 있기까지 『삼국지』는 수없이 개작 ․ 첨삭되었겠지만, 크게 보면 대개 두 번에 걸쳐서 집대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원말 ․ 명초의 나관중(羅貫中)에 의해서 집필되어 전해오다가 청대에 와서 모종강(毛宗崗)이 120회로 정리해 김성탄(金聖嘆)의 서문을 붙여 간행했다. 일설에 의하면 나관중은 이민족 원나라에 항거하는 농민봉기에도 가담했으며, 그들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장사성(張士誠)과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과 장사성은 정치적으로 알력관계였다고 하며 종종 주원장을 옛적의 조조에 비유했다고 하니 나관중의 촉한정통설의 근원을 짐작할 수가 있겠다. 금(金)과 원(元)이 모두 유목민족으로 중원을 차지한 뒤에 한나라 정통성에 대한 의식은 동진 ․ 남북조 ․ 남송 대로 이어졌다. 특히 원작자인 나관중의 정치적 입장은 당대 민중의 인의론(仁義論)과 한족 정통성에 근거를 둔 것이기도 했다. 다시 모종강의 작업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중원은 만주족이 점령한 청의 통치기였다. 여기서 오히려 천하통일의 기초가 된 위를 세운 조조보다는 유비를 중심으로 줄거리가 서술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조조는 귀족이었고 손권도 강남 명문제후의 후손이었지만, 촉한의 유비 ․ 관우 ․ 장비 등은 물론 제갈량까지도 당대 백성들과 거의 같은 몰락한 선비거나 지방 무뢰배에 지나지 않았다.

유비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의리를 지키느라고 여포에게 여러 차례 시달린다든가, 한중 파촉을 대번에 차지할 수 있었는데도 대의명분 때문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가까스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을 보면 『삼국지』가 당대 민중들과 더불어 추구하려 했던 가치가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관운장이 온갖 영예를 뿌리치고 조조를 떠나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다섯 관문 장수들의 목을 베면서 유비를 찾아가는 과정이나, 선주 유비와의 약속 때문에 어리석은 유선을 보필하다가 위나라 정벌을 떠나기에 앞서 제갈량이 「출사표(出師表)」를 올리는 대목 등에서 우리는 뜨거운 감동과 함께 눈물에 젖는다. 그러나 인덕과 의리를 추구한 유비 삼형제와 제갈량 등의 촉한은 실패한다.

의(義)를 추구했지만 현실에서 실패하고 좌절한 영웅을 기리는 백성들의 풍조는 동서고금이 다 같은데, 잔 다르끄나 엘 시드(El Cid)에 대한 서양의 많은 전설이나 우리나라 무속에서 최영(崔瑩)이나 남이(南怡) 장군을 지방마다 사당을 지어 받들고 있다든가 하는 데서 그 예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조조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그를 중심으로 『삼국지』의 기본 줄거리를 전개하는 작품도 있으며, 우리 번역본 중에도 은근히 그런 시도를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는 패권과 현실에서의 힘을 추구하는 가치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본다. 나는 저러한 이른바 ‘현대적 해석’에 대해서 백성들의 보편적인 염원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는 축이다. 따라서 나는 원본의 관점과 흐름에 적극 찬동했고, 이것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삼국지』에 대한 일관된 애정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조조나 손권을 폄하할 필요는 없으리라.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럴듯한 성격에 걸맞은 언행을 하고 있지만, 특히 조조의 성격은 그가 악역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우리는 적벽대전에서 패배한 조조가 죽을 둥 살 둥 도망치는 대목에서 신이 나지만, 그가 헛것에 시달리다 죽으면서 시녀들에게 향을 나눠주는 장면에서는 인생의 무상함과 함께 엄숙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책에서 어떤 이는 정의와 의리를 볼 것이며, 어떤 이는 권모와 술수를, 그리고 어떤 이는 경영과 처세를 읽을 것이다. 번역을 위해 『삼국지』를 찬찬히 다시 보면서 나는 읽을 때마다 자신이 처한 사정과 나이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전에는 유비 삼형제가 모두 죽어버리고 나면 신명도 없어지고 어쩐지 허전해져서 대충 읽어치우게 되었는데, 이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해지던 것이다. 역시 『삼국지』를 읽는 맛은 가슴이 썰렁해지도록 밀려오는 사람의 일생이 덧없다는 회한과, 그에 비하면 역사는 자기의 흐름을 갖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옳고 그름을 판결하게 된다든가, 조금 주어진 생이지만 사람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반성 등일 것이다.

- 『삼국지』(창비, 2003), 옮긴이의 말 ‘원문의 맛 그대로 느끼는 고전의 재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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