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선 채로 꾸는 꿈

칠부능선 2006. 3. 28. 23:22
 

    선 채로 꾸는 꿈           


                                                                              노 정 숙

                                                                  

  너무 높이 날면 거짓말이 된다.

  너무 낮게 날면 세속적이 된다.

  높이를 적당히 조절해야 격이 갖추어진다.

  때로는 높이, 때로는 아주 낮게…… .

  자신과의 고투 끝에 얻어내는 산물이지만 읽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것이 수필이다.

  사실이 기본이며 솔직함을 큰 덕목으로 아는 수필에서 조금은 벗어나고자 한다.  사실만을 나열한 것은 문학이 되지 못한다. 사실은 단초의 구실만으로 족하다. 자전적 소설은 수필의 다른 이름이며, 장편 산문시는 시만이 갖던 고유의 함축성을 던져버렸다. 형식이나 내용에서 장르의 벽은 이미 무너졌다. 이제 수필에서도 가끔은 짧은 호흡으로 단숨에 다가가고, 때로는 긴 이야기로 풀어서 전해야한다.

  프리기아 지방의 사티로스인 마르시아스는 신들이 버린 플룻을 주워 치열하게 연습을 한 후 아폴론에게 내기를 청했다. 승부가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대결이 팽팽해지자 아폴론은 악기를 거꾸로 잡고 연주하자고 제안한다. 비파를 잡았던 아폴론은 어려움 없이 연주할 수 있었으나 마르시아스는 거꾸로 잡은 풀룻을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패배한다. 예술의 신 아폴론에게 도전한 벌로 마르시아스는 나무에 묶여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한다.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 해도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 예술의 세계다.  치열하지 못한 내 태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기와 아집의 단단한 껍질에 창 하나 내는 것으로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는 수필의 세계에 들어선다.

  내 안에 잠재한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작업이 수필쓰기다. 그곳에서는, 미지의 세계에 목마른 방랑기와 풍류에 흩날리고 싶은 바람기도 허락한다. 위악(僞惡)의 옷을 입고 손닿지 않는 현실에 조소를 던지기도 한다. 벗음으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때로는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를 상상하며 수필을 대한다. 솔직함을 최선으로 하며, 치장을 최소화한다. 눈치 보며 밀고 당기는 소모전은 배제한다. 눈에서 시작하는 감성에 충실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여과의 과정을 거친다. 긴 시간 퇴고를 하면서 격렬했던 감정도 삭히고 다듬는다. 편안하되, 가볍게 대하지는 않도록 장치한다.  좋은 여운이 남아 늘 그리운 사람으로 남고 싶은 꿈을 꾼다. 때로는 형식의 틀을 벗고 일탈과 파격에 도전해 본다.

  수필은 벼린 의식에 선 채로 꾸는 꿈이다.

  먼저 쓴 작가의 좋은 글을 만났을 때의 그 벅찬 충만으로 내 짧은 경험의 한계를 극복한다. 현학을 드러내는 것이 수필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수필의 감동이나 공감은 언제나 진솔함에서 나온다.

  진실을 생명으로 하며 정도(正道)를 향한 의지 ― 변함없는 선비정신이 수필의 발목을 잡는 한계가 되기도 하다.

  수필은 성찰을 담은 고백이지만, 나만의 넋두리가 아닌지 점검한다. 내 살아온 이력이라는 것이 너무도 밋밋하여 글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버린다. 경험에는 한계가 있고 사실보다 믿고 싶은 것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닌가. 내 변변치 못한 기억에 의지하는 것도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나는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를 돌아보는 것보다는 미래를 추구한다. 

  오감을 열고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수필적 삶이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도 소재가 된다. 베란다에 방치된 화분에서 움트는 새싹을 보며 그 줄기찬 생명력을 노래하고, 부모님과의 대화는 늘 과거에서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인생의 순환을 깨닫는다. 전혀 새롭지 않은 뉴스는 비자금, 괴자금으로 악취를 풍기지만, 신문을 뒤적이다 시장 할머니의 전재산을 장학재단에 기부하는 가슴 따뜻한 순간들을 새겨둔다.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것들을 뒤집기도 하고 비틀어보기도 하며 분석한다.

  정보수집을 위해 새로운 전시회나 연극공연, 좋은 영화도 가까이 둔다. 정해진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는 가능한 작은 것에서 찾는다. 거대담론의 허상에 빠지는 우(愚)를 경계한다.

  수필은 옷 입기와도 같다. 입는 사람만 편안한 옷은 보는 사람은 볼거리가 없다.  체형에 맞는 디자인과 색상을 선택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결점을 드러낼 줄도 아는 자신감 있는 차림새도 좋다. 그것을 보면 멋을 넘어 자유로움이 전해진다.

  감성과 지성이 잘 어우러지는 인품이 느껴지는 글도 좋지만, 결함이나 실수를 드러내는 솔직함에는 비평의 칼날이 너그러워진다.

  단정한 정장에 머플러나 브로치로 포인트를 줄줄 아는 센스, 그것은 수필의 위트다. 정의감이나 도덕성은 작가의 내면에 스며있는 것으로 족하다. 교훈적인 내용을 전하고 싶을수록 해학이 필요하다. 오늘의 독자는 인내심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입으면서도 멋지게 보이는 것은 확실한 경지다. 형상이 돋보이는 시 같은 수필을 구성하기까지는 치밀함이 따르지만 독자에게는 가볍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좋은 옷이 반드시 멋있지 않은 것은 입는 사람의 분위기와 품위에 어울려야 하는 것과 같이, 좋은 글에는 자기만의 목소리와 향취가 담겨야 한다.

  줄 없는 거문고를 들고 다니던 도연명의 상상력을 떠올리고, 산만 그리고 그림 밖은 물이라고 하는 최북의 그림의 여백에 기대기도 한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의 소리에 귀를 열고 눈길을 모은다. 실수가 많은 엉성한 삶이지만 수필을 쓰는 동안만은 겉보다 내밀한 속을 보기 위해 모든 감각과 기운을 동원한다.

  ‘지친 삶을 이완시키는 재미가 있었는가. 보편적인 공감대가 있었는가. 통찰과 사유의 시간이 되었는가’ 한 편의 수필을 여밀 때마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조금은 긴장을 해도 좋은, 나를 돋보일 옷을 골라 입고 그에게 다가가기 위해 날개의 높이를 조율한다.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도 않게.

  

<글쓰기의 즐거움>에 발표

<소리내어 읽고싶은 우리문장> 에 수록


Edward H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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