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 탐구 육체 탐구 노정숙 아무도 모른다 오른손잡이라서 골병들게 일한 건 오른손인데 왼손이 칭얼댄다. 어르고 달래주어도 흥흥거리더니 아예 비명을 질러댄다. 매일 하는 노동을 운동이라 우기는 오른손, 슬몃슬몃 거들기만 하는 왼손, 세상은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터널 내 병명이 ‘팔.. 수필. 시 - 발표작 2016.07.03
처사, 남명 처사, 남명 노정숙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선생님께서 자주 오르시던 지리산은 연두를 거두고 진진 초록으로 물들고 있습니다. 산길 군데군데 돌계단을 두어 걷기 좋은 둘레 길을 만들어서 연일 인파로 북적입니다. 지리산은 옆구리를 파헤쳤는데도 여전히 신령스러운 기운을 풍기고 있.. 수필. 시 - 발표작 2016.06.15
질주하는 여름 노정숙의 <바람, 바람> 질주하는 여름 비꽃 든다. 여린 몸 낱낱이 힘 모아 한여름 열기를 삭이고 정결한 결기를 품었다. 씻어 내리는 건 비의 본성 감탕밭에서도 맑은 것을 온몸으로 자아올린다. 오늘 내린 비가 어제 것을 씻는다. 거친 대지에 흠뻑 스미고 넘쳐흐른다. 물의 힘은 흐름.. 수필. 시 - 발표작 2016.05.18
촌감단상 - 애통하지 않다 애통하지 않다 노정숙 흰 국화꽃에 둘러싸인 사진 속 그의 눈은 여전히 선했다. 꽃무리 가운데에서도 활짝 웃지 못하고 있다. 직장 상사였던 그는 71세에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투병 중에 죽음을 준비해서인지 보내는 가족들 모습이 담담하다. 대가족의 장남으로 부모, 조부모까지 모.. 수필. 시 - 발표작 2016.05.07
그러려니 그러려니 노정숙 그의 새해 좌우명이라고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뭔가 못마땅하다는 자조가 서려있다. 곧 다가오는 노년의 처세로 적당하다고 맞장구를 쳤지만 부르르 끓는 그의 성격으로 봐서 좌우명을 제대로 지킬지 의심스럽다. 그는 어제 저녁에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 수필. 시 - 발표작 2016.04.27
날아라, 생명 노정숙의 <바람, 바람> 9 날아라, 생명 아랫녘 매화가 은은한 향으로 머리를 풀었다. 다문다문 여리게 핀 진달래 수줍은 품새 꽃바람 날리는 벚꽃이 깜빡 정신을 홀린다. 희고 붉은 송아리 철쭉은 질펀하게 뽀얀 목련은 우아한 자태로 분칠한 장미는 내놓고 요염을 떤다. 살짝 숨길수.. 수필. 시 - 발표작 2016.03.02
중간보고서 중간보고서 노정숙 건강검진을 받았다. 난생 처음, 억지 잠을 자며 내 위속을 들여다보았다. 30분도 채 안 되어 깨어나서 멀쩡한 얼굴로 의사 앞에 앉았다. 오래된 축음기의 나팔 같은 것을 모니터로 보여주면서 설명을 한다. 지렁이가 지나간 고랑을 닮은 붉으죽죽한 물체가 내 위란다. .. 수필. 시 - 발표작 2016.02.16
솔직히 말하지 마라 短수필 솔직히 말하지 마라 노정숙 “진짜 음치다.” 어느새 남편이 얼굴을 내 코앞에 대고 하는 말이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나 보다. 간 크게 직구를 날릴 건 뭔가. 흥얼거리던 노래가 ‘님은 먼 곳에’라서는 아닐 텐데. 내가 노래 못하는 건 나도 안다. 그렇다고 흥까지 없으랴. 그는 .. 수필. 시 - 발표작 2015.12.10
터널 외 오래된 부부 노정숙 전화가 오면 멀리 나가는 남편, 내가 몰라야 하는 통화 내용이 무엇일까. 내 잔소리 버릇 때문이라는데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다시 잔소리 할 의욕도 없으니 다행이다. 저무는 계절에 다시 신세계가 열리려나. 아무도 모른다 오른손잡이라서 골병들 게 일한 .. 수필. 시 - 발표작 2015.12.02
겨울, 겨우살이 노정숙의 <바람, 바람> 8 겨울, 겨우살이 겨우살이, 사철 내내 붙어 살 궁리만 한다. 땅에 뿌리를 박고 필사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건 어미나무의 일이다. 세상은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원통한 건 숙주의 숙명이다. 그녀의 겨울이다. 곱디곱던 그녀, 맛없는 시간을 자꾸 먹.. 수필. 시 - 발표작 201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