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중간보고서

칠부능선 2016. 2. 16. 15:35

중간보고서

노정숙

 

 

건강검진을 받았다.

난생 처음, 억지 잠을 자며 내 위속을 들여다보았다. 30분도 채 안 되어 깨어나서 멀쩡한 얼굴로 의사 앞에 앉았다.

오래된 축음기의 나팔 같은 것을 모니터로 보여주면서 설명을 한다. 지렁이가 지나간 고랑을 닮은 붉으죽죽한 물체가 내 위란다.

오래 전에 십이지장궤양을 앓았으며 완치의 흔적이 있고, 지금은 식도염이 있다고 한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 질환은 남편이 평생 앓고 있는 병이다. 그동안 같은 병을 앓으면서 나는 아무런 병증이 없었는데, 그는 늘 괴롭다고 했다.

내 무심한 반응에 소심한 위는 기척도 못하고 저 홀로 앓고 또 나았는가 보다. 얼마 전, 친구 부부도 나란히 대상포진을 앓았다.

같은 환경에 같은 음식 때문일까. 다른 혈통인데 어찌 같은 병을 앓을까. 부부도 가족력의 범위에 드는지.

그야말로 이성으로서 애틋함은 없어지고 피붙이가 되어가나 보다.

모임에서 누군가 남편이 ‘남의 편’이라고 생각해야 편하다는 말에 속없이 웃었다. 그 속을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그 속의 병력이 같다는 건 아이러니다.

 

보이지 않는 속은 들여다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속을 남에게 보이는 것도, 남의 속을 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변화무쌍한 마음이 아닌 대동소이한 내장을 내보인 건 그나마 다행이다.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하는 일은 그 노역에 대한 보상보다는 낭패가 크다.

그저 보여주는 것만 보고 남의 속은 헤아리지 않는 게 좋다.

 

산부인과 검진에서 내 자궁에 혹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의사는 6개월에 한 번씩 확인하라고 한다. 혹여 그것이 자라서 나쁜 기운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지.

오래 전에는 그것이 제법 힘을 쓰던 때여서 나는 달거리 때가 되면 과다 출혈과 통증으로 초죽음이 되었었다.

대학병원 의사는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며 명함까지 줬지만, 몇 년을 그냥 버텼다. 그리고 기다리던 폐경이 왔다, 그야말로 완경이다.

나는 수술대에 눕지 않고 그냥 건너왔다. 이제 와서 새삼 뭘 바라고 6개월에 한 번씩 그 면구스러운 의자에 오르겠는가.

누구는 내게 뜨거운 맛을 못 봐서 그렇다고 하지만, 여전히 착한 환자가 되기는 글렀다.

 

금지된 것을 하지 않는 사람과 욕망대로 산 사람의 수명 비교에서 허탈감을 느낀다.

마음씀씀이 넓고 반듯한 자세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던 S선생님,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곧은 성품으로 한 점 흐트러짐 없었던 Y선생님,

인정이 많아서 어려운 이들에게 열정적으로 봉사하던 P선생님,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분들을 떠올리면 사람의 명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과 이별을 하고 ‘이제부터 막 살 거야’ 라며 투정도 하고,

 하늘나라에서도 고운 사람이 필요해서 일찍 데려가셨나, 여기며 위로도 했다.

 

주변을 돌아보면 건강에 대한 노력과 수명은 비례하지 않는다. 어쩌면 운동보다 마음 다스리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마음이 뇌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은 여러 실험에서 입증되었다. 뇌가 건강한 사람은 면역력이 좋다고 한다.

뇌는 생각이다. 억압하면 기가 죽고 뇌 회로가 좁아지고 막혀서 면역력이 떨어진다.

뇌 연구자에 의하면 에스트로겐이라는 여성호르몬이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한다. 억울할 때 화내고, 울고 싶을 때 크게 우는 것이 좋다.

눈물은 몸속의 나쁜 물질을 함께 빼준다고 한다. 술이 여성호르몬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니 멀리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술을 잘 마시면 남성적이며 호연지기가 있다고 했는데 그 반대인 것이다.

감정에 솔직한 것이 건강에 좋다지만 가릴 것 많은 어른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자연치유력을 믿는다. 모든 병이 면역력만 지켜주면 스스로 회복된다고 믿는다.

암에 걸려도 나을 사람은 낫고 갈 사람은 간다. 그것은 그의 명이 다 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술 후 내장이 제 자리를 잡는 것도 자연치유의 힘이다. 그것이 없다면 아예 수술이라는 것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사고사도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자책하기 보다는 정해졌던 일로 받아들인다.

인간관계에서도 자연치유력이 작용한다. 나와 같지 않은 남을 내 기준에 맞춰 판단하면 상처받기 십상이다.

시간은 치유의 힘이 있어, 되돌아 올 것은 제 자리를 찾을 것이고 아닌 것은 떠날 것이다. 애써 변명을 해도 큰 효력은 없다.

본성이 노력으로 바뀌는 부분은 아주 미미하다. 매일 기도생활을 하는 수도자들도 평생 5% 정도 바꿀 수 있다는 통계가 있다.

본향으로 돌아가려는 자기복원력이 천성과도 잇대어 있을 것 같다.

 

몸에게 충성을 다질 때가 있었다. 귀찮은 운동도 열심히 하고 좋아하는 간식도 줄이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가려서 먹었다.

그러나 이제 그냥 입에서 당기는 걸 맛있게 먹고, 몸을 게으르게 두기로 했다. 몸 보다 마음을 다지고 뇌를 깨우려고 한다.

오랜 세월을 동동거리며 건너왔다. 지금까지 큰 고장 없는 몸이 대견하다.

머지않아 쇠한 기운에 나직한 음성으로 느릿느릿 행동할 것이다. 그런 몸에는 누구 말이든 쉽게 수긍하는 말랑말랑한 정신이 제격이다. 너무 쟁쟁하게 맑아서 낡은 몸을 안타까이 바라보는 건 슬프고 난감한 일이다.

맑은 정신으로 100세 삶을 마감한 스코트 니어링이 떠오른다.

‘죽음이 삶의 절정이자 마지막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며 곡기를 끊고 최후의 과정을 하나하나 느끼며 떠났다.

그의 아내 헨렌 니어링은 고통과 억압이 없는 죽음, 여전히 생명의 흐름이 이어진 훌륭한 죽음을 슬픔 없이 바라보았다.

마른 잎이 떨어지듯 숨이 멈추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주 속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그런 사태를 대비해서 ‘사전의료의향서’를 써 두었다.

내가 의식이 없을 때, 혹은 정신을 놓았을 때, 인공적인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당부다.

태어나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도 있다.

늘 자는 듯이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친정어머니는 맑은 정신으로 아침 잘 드시고 잠자는 듯이 혼수상태 사흘 만에 돌아가셨다.

평소 기도대로 떠났다. 어떤 모습으로 떠날지 생각하며 마음에 깊이 새기고 염원한다면 그리 되지 않을까.

여전히 대범한 척 씩씩하게 언제든 부르시면 네, 하고 가겠다고 새긴다. 자꾸 흔들리는 마음을 스스로 세뇌한다.

“네? 네! 네~ ”

 

<PEN 문학> vol. 129호  2016년 1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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