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숙의 <바람, 바람> 9
날아라, 생명
아랫녘 매화가 은은한 향으로 머리를 풀었다.
다문다문 여리게 핀 진달래 수줍은 품새
꽃바람 날리는 벚꽃이 깜빡 정신을 홀린다.
희고 붉은 송아리 철쭉은 질펀하게
뽀얀 목련은 우아한 자태로
분칠한 장미는 내놓고 요염을 떤다.
살짝 숨길수록 당기는 법, 감질나야 더 끌리는 데
숨길 줄 모르는 꽃들의 난장
저 치부를 드러낸 필사의 구애.
방사 밖에 수가 없는 지극한 꼴림
어쩔거나, 피어라 생명.
Energy of spring 2 by JAIM
벌은 꽃을 향해 단숨에 날아든다.
활짝 펴지 않은 봉오리 속까지 내리 섭렵한다.
그러다 잉잉 호박꽃에 갇히기도 한다.
한번 꽂으면 목숨을 바치는 게 벌의 정신. 목숨을 건 몸말,
드러낸 욕망은 차라리 순정하다.
나비는 진한 향으로 유혹을 해도 한 걸음에 내달리지 않는다.
예 슬쩍 제 슬쩍 곁눈질하며 나울나울 다가온다.
꽃에 앉는 것도 사푼, 속 깊이 들지 않는다.
수컷은 암컷을 찾아 날아다니고 암컷은 교미 후 산란에 목숨을 건다.
쾌락은 순간이고 대 잇기가 지고의 언명이다.
언명이 휘청휘청, 도처에 갑작바람 분분 휘날린다.
꽃이 열망하는 게 벌 나비가 아니듯 벌 나비의 짝도 꽃이 아니다.
다행이다, 동상이몽.
착각 없이 팍팍해서 어찌 살아 내겠는가.
꽃 벌 나비, 식상食傷한 봄 풍경이 어엿이 식상式像에 오른다.
Energy of spring 3 by JAIM
<현대수필> 2016,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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