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니
노정숙
그의 새해 좌우명이라고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뭔가 못마땅하다는 자조가 서려있다. 곧 다가오는 노년의 처세로 적당하다고 맞장구를 쳤지만 부르르 끓는 그의 성격으로 봐서 좌우명을 제대로 지킬지 의심스럽다. 그는 어제 저녁에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큰 소리를 냈다. 아침이 되자 멋쩍은지 내게 “그러려니 해”라고 한다.
남편이 매일 술 마시며 늦게 들어와도, 아이들이 바빠서 안부 전화조차 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오래 전 사건을 지금 일로 착각하며 성화를 하셔도, 90세 아버님이 담배를 여전히 피우시는 것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아파트 관리비가 야금야금 올라도 국제원유가 떨어졌다는데 국내 기름값이 내리지 않아도, 조금 숨을 길게 쉬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신문을 보면서 ‘그러려니’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부산에서 70대 할머니가 1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놨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인 할머니가 매월 자신이 받는 주거급여, 노령연금 55만 원 가운데 10만 원씩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참았을 갈증과 식욕과 남루가 그려진다.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못하는 어른을 떠올리며 존경심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성실한 어른들의 희생과 불굴의 의지로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이제 누구보다 그 자신들을 위무해야 할 때다. 기부 같은 건 부자들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니 하려니 마음이 찔린다.
칼에 베이지 않고 망치로 내리쳐도 다치지 않는 캐나다산 특수 장갑이 나왔단다. 8만 원이라는 이 장갑을 소방관에게 지급하라는 여론이 SNS상에 들끓고 있다. 왜 이런 일을 국민이 걱정해야 하는지. 소방관의 월급이 박봉이라는 건 이미 아는 사실이다. 사명감만으로 견디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에 맞는 처우가 시급하다. 그러려니 하려니 속이 탄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공식입장을 유엔에 제출했다. 여기에 지난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문까지 첨부했다고 한다. 저 파렴치를 어쩌나. 위안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중국과 함께 추진하다가 우리 정부는 왜 이런 합의를 했을까. 위안부 할머니들을 더 참혹하게 만드는 10억 엔 보상이라니. 굴욕을 넘어 허탈하다. 정부가 합의한 일에 가타부타 말할 건 아니라지만 그러려니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을 향해 눈총만 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속도가 가장 느린 집단이 정치가라고 했다. 기업이 100마일로 달릴 때, 정치조직은 3마일을 달린다고 했다. 그런데, 속도뿐 아니라 방향도 문제니 어쩌나.
작년에 프라하에 갔을 때 교민 이 선생이 말했다. 해외에 나와서 보니 친정이 잘 살아야 힘이 된다고. 그런데 그 친정이 문턱 높은 대사관이 아니라 선전하는 기업과 기업정신을 받치고 있는 헌신적인 노동자들이라고 한다. 체코항공의 53% 지분이 대한항공 것이라서 프라하 공항에 ‘출국’ ‘도착’이 한글로 써 있다. 속도를 내는 기업의 경제력이 애국이다. 거북이걸음에서 아예 뒷걸음질 치는 일들을 그러려니 하게 될까 두렵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발전한다. 좋아진 세상에서도 그늘은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햇살은 지나치게 강렬하고 그늘은 더욱 어둡고 추워졌다.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은 우울하지만 현실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건 고전이 되었다. 민주화된 대명천지에서 부의 세습과 권력의 세습, 지식의 세습까지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다. 뛰어넘을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그러려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18명이 7년 만에 출근을 한다. 하늘 가까이 높은 곳에서 투쟁하던 영상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 지난한 시간을 헤아리니 눈물겹게 장하다. 부당함에 굴하지 않는 사투, 굴종의 그러려니를 이겨낸, 투쟁의 승리다. 어찌할 수 없는 계급론 앞에서도 작은 힘들이 뭉쳐 새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러려니’는 체념과 포기를 너그러움으로 포장하고 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신념이 서려있다. 사람은 상대의 말로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쿵, 하는 각성이 있어야만 변화한다. 정색하고 따져야 할 일들에서 힘을 빼려고 마음먹었지만 쉽지 않다. 쉽게 변하지 않을 부당한 정책과 제도, 관습에 대해 끊임없이 채근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또 다른 ‘그러려니’를 찾는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와 관용을 담는다. ‘말랑말랑한 사람’이 내 노년의 희망사항이라고 했지만 아직 순해지지 않은 걸 보면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다. 변하는 세태를 모르는 간 큰 남편과 살아내려면 내가 먼저 뻐석대는 풀기를 거두어야 한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물러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다는 미명이지만 실은 그러려니를 앞세운 직무유기인지도 모른다.
사는 일이 긴 줄넘기 놀이 같다. 빠른 판단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둥근 원 안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호흡을 야물게 맞춰야 한다. 큰 흐름에서 한번 이탈하면 다음 수순을 따라잡기 힘들다. 순방향에 서든, 역방향을 택하든 삶은 예전보다 길어졌다. 끝까지 잘 살아내려면 최후의 무기인 몸을 다스리고, 최고의 무기인 정신의 날을 갈아야 한다. 너무 날카로워 위험하지 않게, 너무 무디어 어리석지도 않게.
신문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을 시간이 올까. 그러려니 하면서 씁쓸하게 고개만 주억거릴 날을 생각하면 뼛속에서 바람이 인다.
그의 ‘그러려니’가 안으로 팽팽하고 밖으로 느슨할 수 있기를.
<월간문학> 2016,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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