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숙의 <바람, 바람> 8
겨울, 겨우살이
겨우살이, 사철 내내 붙어 살 궁리만 한다.
땅에 뿌리를 박고 필사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건 어미나무의 일이다.
세상은 처음부터 공평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원통한 건 숙주의 숙명이다.
그녀의 겨울이다.
곱디곱던 그녀, 맛없는 시간을 자꾸 먹어 하얗게 쇠었다. 무거워 무거워서 홀로 움직일 수가 없다.
쇠한 가죽부대에 격정의 여름과 희열의 가을이 담겨있다.
웃음과 눈물과 땀이 켜켜이 쌓여 아랫도리가 늘어졌다.
Energy - Moon Festival 2 JAIM
어른은 영감靈感으로 살고, 노인은 기억으로 산다.
몸이 기울고 나니 기억과 영감이 치열하게 겨룬다.
언감생심 숨 거둘 그날까지 영감님을 갈망하지만, 한물 간 기억만 가물가물 꼼지락거리며 生을 연장한다.
생은 난만한 달빛 아래 잠깐의 축제다.
축제가 끝나면 모두들 맨몸으로 돌아간다.
누운 자리에서 거름이 되어 새 생명을 일으킬 것이다. 어떤 생명으로 다시 피어날 것인가.
저기 다음 생, 환한 봄이 밀려온다.
Energy - Moon Festival 1 JAIM
<현대수필> 201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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