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춤추는 가을

칠부능선 2015. 8. 18. 21:58

노정숙의 <바람, 바람> 7

 

춤추는 가을

 

 

가을 들녘에 춤판이 벌어졌다.

고개 숙인 벼이삭 슬렁슬렁 블루스를, 탐스런 수크렁 멀리 가까이 오가며 왈츠 한창이다.

서걱서걱 수수밭 숨결마다 각 세우는 탱고며, 잘 여문 해바라기 늠실늠실 플라맹고까지.

흥대로 머리 맞대고 바람에 몸 맡겨 휘휘친친 군무 흐벅지네.

여태 덜 익어 고개 든 놈도 있네, 불쌍타 뻐센 것들. 힘 빼고 한바탕 흔들면 되는 것을.

 

 

 

      

                                                                                 Energy-2014 Dancing Meditation 6 - JAIM

 

 

공포가 창궐했다.

사람 모이는 곳이 헐렁하다. 국제전염병 ‘사스’도 우리는 신고 다니며 물리쳤다.

돌연한 죽음보다 무서운 건 생각 없이 오래 사는 것인데….

35분에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에서 무서운 게 뭔가. 명은 하늘에 있다는데

죽음의 공포恐怖 보다 위험한 삶의 공포空包.

담방담방 뒤꿈치에 힘을 넣고 오달지게 흔들어 보자.

 

 

 

허설쑤로 어림없다.

온 나라가 흔뎅거리니 어느 가락에 맞춰 춤을 추나. 슬금슬금 맞춘 발이 남의 발등 마구 밟네.

반 박자 늦는 건 웃음거리나 몇 박자 뒤진 건 한숨거리네. 두 발 쿵쿵 다지고 팔을 한껏 휘두르면

잡것 날것 다 달아날 터, 온몸이 흠씬 젖네.

오직 믿을 건 썩지 않는 내 땀이네.

 

 

                                                                                       Energy-2014 Dancing Meditation 9 - JAIM

 

 

 

     <현대수필> 2015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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