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노정숙
‘땅콩녀’ 얘기를 들으니 땅콩보다 엄청 큰, 종이 떠오른다.
유신시절 그녀의 할아버지가 불국사에 걸어놓은 신종이다.
그 종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빕니다. 한진그룹 조중훈 올림’이라는 명문이 새겨있었다.
에밀레종의 반의 반만 하다는 종은 두께가 고르지 않아 내내 웅웅거렸다.
종에 담은 거룩한 기원은 허공에 흩어지고, 명문은 영검을 발휘하지 못해 깎이어 없어졌다.
청명은 멀고 험하다.
기우뚱 걸린 종은 이윽고 허리를 펴고 섰다. 징징징 오랫동안 예불시간을 알리고 있다.
갸륵한 종, 영웅시대의 아름다운 유종有終이 되길.
2015 <실험수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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