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숙의 <바람, 바람> 4
동동동
동백冬柏
가을부터 앙다문 입술,
흰 눈을 머리에 이고도 여문 입을 열지 않는다.
새빨간 입술만 봐도 설렌다.
살짝 내민 혓바닥에 황금빛 조화 서리면 바짝 달아오른다.
어쩌라고 규중처자인양 옅은 미소만 머금고 새치름하다.
어쩌자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통째로 목을 탁, 꺾는다.
동침冬沈
겨울에 나를 담근다.
산지사방 휘도는 마음, 울뚝불뚝한 성질머리,
때 없이 징징거리는 관절을 꽁꽁 묶어 동작 정지시킨다.
겨울에 제 맛이라 동침冬沈에서 나온 동치미,
무와 소금물이 만나 이루어낸 작품,
코끝이 찡하고 더부룩한 속을 뚫어준다.
무르익지 못하고 설컹거리는 나는 무를 우러른다.
진한 맛이 거저 들었겠는가.
동지冬至
이룬 것 없는 기나긴 밤,
한 허리 베어내도 쓸 때가 없다.
서리서리 감아둘 노래도,
굽이굽이 펼칠 이야기도 없는 내 허름한 편력.
셈속이 밝지도 못하면서 단방에 빠지지 못하는 어정쩡한 몸짓,
들끓는 가슴과 굳은 몸은 내내 불협화음이다.
다다를 수 없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발만 구른다. 동동동.
<현대수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