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반란

칠부능선 2014. 11. 1. 16:48

                          반 란

 

                                                                                노정숙

 

내 몸이 반란을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할 때면 등이 당기고 아프다. 팔이 올라가지 않고 어깨에 무거운 추가 매달린 것 같다.

고장이 날만도 하지, 얼마나 오랫동안 잘 썼나.

모임에서 나도 모르게 어깨로 손이 가고 얼굴을 찡그렸는가보다. 선배는 내 얼굴에 웃음기가 없어졌다며 침술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맥을 짚더니 상체에 기와 혈이 몰렸단다. 균형을 잃은 몸은 약한 부분에서 이상이 나타나는 것이란다. 그러고 보니 지난겨울에는 발이 시려 쉬이 잠이 들지 않았다. 가슴에 혈이 몰려있다는 말에 끄덕인다. 가슴 속에 가득한 것을 머리로 풀려고만 하는 이 미련이라니.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유는 공허한 것인데 늘 생각만으로 분주한 한계가 보인다. 병은 마음에서 온다며 내게는 먼 일처럼 여긴 것이 우습게 되었다.

오슬로 교외의 프로그너 공원에 세계 최대의 조각공원이 있다.

북구의 로댕이라고 하는 상징적 자연주의의 작가 구스타프 비겔란. 어떤 선택의 권한도 없이 전생에도 자신은 조각가였을 거라는 숙명적인 작가다. 넓은 공원을 꽉 채운 작품의 방대함이 놀랍다. 호전적인 치열한 눈빛이 막대한 노동을 감수했으리라.

사람의 일생 ―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나타낸 수백의 청동상과 화강암 조각들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생기를 더하고 있다.

인간의 본능과 감정을 이처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한계상황에서의 모습,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까지 읽혀진다.

태아의 웅크린 모습에서부터 장난치는 아이들, 아이를 어르는 행복한 어른의 얼굴에 피어나는 웃음, 서로 대화하고 춤추는 남녀, 사랑을 나누고 싸우기도 하는 일상의 우리들 모습이 그곳에 있다.

거대한 가족 청동상은 21개의 인물상으로 서로 보호하려는 인간의 원시적 본능을 나타내고 있다. 가족을 감싼 팔에 불거져 나온 힘줄은 노인과 어린이를 보호하는 가장의 힘이 나타난다.

공원 중앙에 ‘모노리텐’ 라고 하는 121명의 인간탑이 우뚝 서있다. 가까이 보는 이 인간군상은 섬뜩하다.

인간이 인간 위에 포개지는 얽히고설킨 탑의 맨 아래는 힘없는 이미 생명을 잃은 듯한 시체들이 깔려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선과 악의 갈등, 부활과 다산의 의미, 분분한 해석이 17m 높이의 인간기둥을 따라 올라간다.

앙상한 두 노인 - 굽은 등을 서로 의지해서 겨우 걸을 것 같은 휘어진 다리, 처진 배의 주름, 초라한 몰골의 두 노인의 퀭한 눈, 어설프게 쥔 손이 자꾸 따라붙는다. 무덤에서 나온 듯 죽음이 가까이 온 인간의 모습이다.

선조들의 해골을 줍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부터 주체할 수 없는 힘이 솟는 청년기에는 실존하는 위험과 악의 상징인 용과 싸우는 모습에서 구속을 깨기 위한 투쟁의 역사를 펼친다. 장년에는 고뇌가 있고 노년에 이르러 죽음에 다다른 모습을 나무 위에 놓인 뼈로 묘사하고 있다. 삶의 순환이 보인다.

비겔란은 인간의 모든 심리적 현상은 평범한 일상을 통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그는 작품에 제목을 달지 않음으로서 관람자에게 해석을 맡긴다. ‘나의 모든 작품의 의미에 관한 한 나는 괴테가 그의 작품 파우스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에커만의 질문에 그 작품이 단지 한 가지 생각의 실타래에 걸려 있지 않다고 대답한 것과 같은 생각이다. 나는 나의 작품을 설명할 수 없다. 단지 나의 작품은 보편적이면서, 주관적인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작은 지방 도시였던 오슬로시는 이 위대한 작가에게 지속적인 지원을 하면서 작가가 가진 창조적 근원을 모두 이끌어냈다. 그로인해 세계의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 이 시간에 프로그너공원의 두 노인의 초상이 떠오른다. 너무 적나라해서 피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내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다. 너무 일찍 겁먹고 있는 것인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닮아 가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한계 앞에 힘이 빠진다. 늙음은 거부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이제 시작하는 내 몸의 반란에 대해 의연할 수가 없다. 더 깊어질 통증보다 마음이 먼저 약해질 것이 두렵다. 반란에 순응해야 하는 시간, 거역할 수 없는 삶의 순환 가운데 거치는 한 과정이다.

세월에 순응하는 몸과 달리, 호시탐탐 반란을 꿈꾸는 마음은 무시로 내달린다.

 

<문학시대> 2014,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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