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907

애통하지 않았다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71세, 그 분이 돌아가셨다고. 5개월간 희귀병을 앓으셨단다. 아들과 딸이 결혼했고 손자, 손녀도 봤다. 없는 집 장남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직장에서도 일이 많고 힘든 자리에만 있었다. 좋은 사람,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가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힘들었을 이 세상 나들이에서 비로소 풀려났다. 단정하고 깔끔한 성격 훤칠한 키에 선한 얼굴을 그려본다. 하늘나라에서 안녕하시길. 다음 생이 있다면 마음대로 사시길. 하고 싶은 일을 다 했다고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시던 아버님, 아버님이 이 말씀 하신 게 70세쯤 부터다. 지금 90세다. 요즘은 이런 말씀도 안 하신다. 신문에 난 기사에 100세 이상 사는 분들의 특징이 아버님과 같다고 하니 씨~익 웃으신다. 매일 자전거 운..

밤 산책

오랜만에 탄천을 걸었다. 맨날 걷던 방향으로 걷는다. 무의식의 행위다. 지난번 친구 전시에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모두 내게 한결같다고 한다. 한결같음, 참 지루한 말이다. 그래 다음엔 의식을 깨워 다른 길을 걸어야겠다. 아무 생각없음, 이것이 무의식인줄 알았는데 비합리적인 정신의 힘이 무의식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이어폰을 꽂고 뛴다. 아자씨들은 멈춰서서 아이폰을 작동하고 있다. 이 밤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걷는 사람은 뭔가, 작은 개 두 마리를 앞세우고 걷는 여자, 건너편 자전거도로에서 신나는 음악소리를 흘리며 자전거가 지나간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 밤, 아직 꽃들은 움츠리고 있지만 난 마음을 열어젖혔다. 교회의 십자가를 보며 성호를 긋는 남자를 생각했다. 죄 짓지 말자, 아니 죄를 가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