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족 / 김명인 실 족 / 김명인 그 작은 연못에서 그가 실족했으리라곤 누구도 믿지 않았다. 사체는 부패한 채 며칠 만에 떠올랐다 등에 거적때기를 대고 누워 노인은 이제 아무것도 버틸 것이 없다는 듯 검게 팬 눈으로 구름의 흰자위를 뿌옇게 걷어올리고 있다 평생을 힘들게 살아온 듯 거칠게 접힌 얼굴이며 목덜미.. 시 - 필사 2006.07.09
등 꽃 / 김명인 등 꽃 / 김명인 내 등꽃 필때 비로소 그대 만나 벙그는 꽃봉오리 속에 누워 설핏 풋잠 들었다 지는 꽃비에 놀라 화들짝 깨어나면 어깨에서 가슴께로 선명하게 무늬진 꽃자국 무심코 본다 달디달았던 보랏빛 침잠, 짧았던 사랑 업을 얻고 업을 배고 업을 낳아서 내 한 겹 날개마저 분분한 낙화 져내리면 .. 시 - 필사 2006.07.09
바닷가의 장례식/ 김명인 바닷가의 장례식 / 김명인 장례에 모인 사람들 저마다 섬 하나를 떠메고 왔다, 뭍으로 닿는 순간 바람에 벗겨지는 연기를 보고 장례식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만 우리에게 장례말고 더 큰 축제가 일찍이 있었던가 녹아서 짓밟히고 버려져서 낮은 곳으로 모이는 억만 년도 더 된 손금들, .. 시 - 필사 2006.07.09
오래된 사원1 / 김명인 오래된 사원 1 /김명인 사원을 지키던 수도승들은 이미 돌아갔다 무료와 허기에 기댄 이런 출분은 애초 내 뜻이 아니었다, 마음이 풍경을 얻어 스스로의 완성으로 나아간 흔적을 언제 발견했던가 부두 근처 열 병합발전소 굴뚝이 하루의 노역을 바다 쪽에서 육지 쪽으로 옮겨놓는 시간 창밖으로 보면 .. 시 - 필사 2006.07.09
나비 / 김명인 나 비 / 김명인 너울을 뒤집어쓴 늙은 호박잎새 위로 흰나비 한 마리 날아간다 9월 언저리에 남을까, 시월로 건너갈까 머룸 자리 마땅찮을 때 저 나비 섬약한 더듬일 펼쳐 한참이나 없는 경계 더듬거린다 반짝이는 파편의 빛들이 잎새 공간을 비워내지만 모든 잎들은 여름의 길이었으므로 햇빛 한 가닥.. 시 - 필사 2006.07.09
사랑의 단면 연애의 단면(斷面) - 김기림 애인이여 당신이 나를 가지고 있다고 안심할 때 나는 당신의 밖에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의 속에 내가 있다고 하면 나는 한 덩어리 목탄에 불과할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놓아 보내는 때 당신은 가장 많이 나를 붙잡고 있습니다. 애인이여 나는 어린 제비인데 당신의 의지는 끝이 없는 밤입니다. Marc Chagall 마르크 샤갈의 사랑과 닮아 있다. 때론 목탄이 되고싶은 나도 있다. 시 - 필사 2006.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