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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무 / 이어령

골무 - 이어령 인간이 강철로 만든 것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대립을 이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칼과 바늘일 것이다. 칼은 남성들의 것이고 바늘은 여성들의 것이다. 칼은 자르고 토막내는 것이고 바늘은 꿰매어 결합시키는 것이다. 칼은 생명을 죽이기 위해 있고 바늘은 생명을 감싸기 위해 있다. 칼은 투쟁과 정복을 위해 싸움터인 벌판으로 나간다. 그러나 바늘은 낡은 것을 깁고 새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 깊숙한 규방의 내부로 들어온다. 칼은 밖으로 나가라고 명령을 하고 바늘은 안으로 들어오라고 호소한다. 이러한 대립항의 궁극에는 칼의 문화에서 생겨난 남성의 투구와 바늘의 문화에서 생겨난 여성의 골무가 뚜렷하게 대치한다. 투구는 칼을 막기 위해 머리에 쓰는 것이고 골무는 바늘을 막기 위해서 손가락에 쓴다. 남자가 전..

산문 - 필사 + 2009.12.16

나, 중심

어르신이 전화를 했다. 얼굴 보여야 할 행사에 얼굴을 못 봤다며 무슨 일이 있느냐고. 외할머니가 되느라 그랬다니까 한~참 설교를 하신다. 사랑에 절제가 필요하며, 특히 자식에 대해서 맹목적인 우리나라 여자들이 경계해야할 것이 자식사랑에 대한 절제라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몇 달 외국에 다녀올 것이라며 다녀와서 만나자고. 해줄 말씀이 많으시단다. 할머니 노릇때문에 이 한 달, 내 생활이 엉망이 된 건 사실이다. 더우기 연말이라 꼭 참석해야할 행사가 많았다. 딸은 놀이방이나 도우미를 불러놓고 나가라고 했지만 모두 포기했다. 나 없이도 행사는 잘 치루어졌지만, 우리 집에서는 지금 내 충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다. 이렇게 내 노동력을 확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간이 앞으로 많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