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파도타기

칠부능선 2006. 7. 3. 23:35
 

                       파도타기



                                                                

  “왜 그게 하고 싶은데요.”

  인공 파도타기를 하고 싶다니까 아들의 눈이 커진다.

오십이 넘은 엄마는 더 이상 엄마가 아니고 어머니로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인가.

 

  여름, 한낮 볕이 따갑다.

  친구들과 물놀이공원의 북새통에 용감하게 끼어들었다.

수영복 위에 긴 남방과 구명조끼, 챙 넓은 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인공 파도타기에 나선다.

2.5미터 수심이 가장 깊은 곳으로 가서 뚜우 소리를 예고로 밀려오는 파도를 등에 진다.

몸에 힘을 빼고 그대로 있으면 함께 출렁거리며 넘어간다.

이어서 두세 번의 작은 파도가 따라온다. 첫 번째를 잘 넘기면 여유롭게 따라 넘는다.

몇 번 떠밀려 미처 깊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다음 파도를 만나면 파고가 더 세다.

  다리가 저릴 무렵 마지막에 오는 잔파도가 압권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잔파도의 사방공격은 물을 베게삼아 한껏 여유를 부려야하는데

잠시 두려운 마음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순간 박자를 놓쳤다.

락스 냄새나는 역겨운 물을 많이 마시고 정신을 차리니 한참 밀려와 있다.

  어중간한 맡김에서 오는 혼돈이 이런 것인가.

 

  파도타기처럼 우리 삶에도 예측 가능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본다.

  ‘전화위복’이나 ‘새옹지마’를 터득한 삶이란 얼마나 재미없는가.

화를 당했을 때에 다가올 복을 위한 전주곡이라며 초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나,

좋은 일이 생겼는데도 다음에 올 나쁜 일을 대비하는 사람은 참으로 멋 없지 않은가.

  지금 실망할 일이 있으면 세상이 무너지는 표정을 짓는 것이 좋다.

의연하게 포장하는 인내까지 얹어 더욱 힘들 일이 무엇인가.

순간순간의 감정을 소중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다음 차례로 복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내일의 일이다.

그때  날아갈듯 기뻐하면 족하다.

 

  속없단 소리를 들은들 어떤가.

반세기를 달려온 이력이 모든 것을 덮을 것이다.

  오늘도 예감으로 오는 뚜우 ~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수필시대』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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