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죽어도 좋을, 저녁

칠부능선 2006. 7. 1. 17:29
 

   죽어도 좋을, 저녁  

                              

  

                                   친구의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들이 신경전을 벌인다. 2남 2녀의 다복한 가정은 어느새 서로 비난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일상을 돌봐줄 사람을 찾으니 모두가 거래조건을 먼저 따진다고 한다. 

  ‘사랑은 없다. 다만 비즈니스일 뿐이다'형제들이 이구동성으로 실감하고 있단다.

  시골에서 땅부자로 소문난 아버지는 많은 땅의 한 부분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전에 새로운 여자에게 소유권이전을 해 주고 나머지 생의 벗을 구해야하는지. 제 몫에서 떨어져 나갈 부분에 대해 자식들은 왈가왈부하지만, 결단은 아버지의 몫이다. 

 

  모임에서 재치 있는 유머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선배가 있다. 나이 50에 애인이 있으면 ‘가문의 영광’이고, 60대는 ‘신의 은총’이며, 나이 70에 애인이 있으면 ‘죽어도 좋아’라고 한다. 그날 모인 사람들 중에서 누가 가문의 영광이나 신의 은총을 입을 만한지 곁눈질 해보지만 전혀 낌새가 없다. 죽어도 좋을 듯한 행복한 얼굴은 더 더욱 없다.

  그러나 안과 밖이 다르다고 죄는 아니다. 시끄러운 안이 그대로 드러난다면 그것도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한바탕 웃음으로 세태에 대한 개탄도 없이 넘어갔다.

 

  영화'죽어도 좋아’는 70대 여자와 남자의 사랑이야기다. 노년의 성을 다룬 최초의 영화라는 것으로 상영 전부터 시련이 많았던 것을 보면서 문화적 성숙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70대는 성(性)에서 제외된 제 3의 성이다. 이미 감각을 초월한 연륜으로 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남세스러운 일인 것이다. 더욱이 벗은 몸의 적나라함은 혐오스럽다고 한다. 시들어가는 육체에 대한 경외감은 없다. 그렇다고 연민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욕망에 있어서 완전한 소외층으로, 이미 사랑은 없다고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제 나이의 배우들이 노년의 성적 욕구가 감춰야 할 일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만이 새롭다.

 

  육체에 남아있는, 죽어도 좋을 만한 희열은 언제까지 기억될까.

  사람마다 다른 신체리듬, 제조연월일보다 유효기간이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열변이 아니더라도 살아온 모습에 따라 다른 노년을 맞는다.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 투자한 시간만큼의 여유가 보인다.

  건강한 정신이 건강한 몸을 만든다는 말이 허상일까. 요즘은 정신보다 몸이 정직할 때가 많다. 때때로 몸이 머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울어가는 몸을 잘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벅찬 일인가. 그래서 몸이 정신을 배반하기 전에, 스스로 정신을 놓아버리기도 하는가 보다. 정신을 놓는다는 것은 맨정신으로 잘 늙어간다는 것의 무게, 그 부담감에 대한 도피인지도 모른다.

  마음보다 몸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욕망을 접을 때 혼란에 빠진다.

  마음의 준비 없이 몸에 순종해야할 때 서늘한 가슴을 준비하고,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을 다스리는 법도 터득해야한다.

 

  나이를 초월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보는 것은 즐겁다.

  몸에 대해서, 더욱이 욕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경원시하던 철학동네에서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욕망하지 않는 삶은 곧 죽음이다’고 자크 라캉은 말했다. 이성중심주의를 해체하고 인간을 욕망의 주체로 보았다. 욕망을 탐색한 사람답게 그의 삶 역시 욕망으로 치열했다. 왕성한 지적호기심과 지칠 줄 모르는 탐구욕으로 70세가 넘어서도 정신분석을 수학화 하기 위해 젊은 수학자로부터 위상학을 배우고, 노자와 공자를 이해하기 위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그가 66세에 쓴 책「에크리」는 유럽에서 철학서가 빵처럼 팔려나가는 인기를 누렸다.

  여성에 대한 열정도 욕망이론답다. 조르주 바타이유의 아내와의 만남에 그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들었고, 결국 첫 번째 부인과 결별하고 재혼을 한다. 그 후 잡자사 여기자와의 만남도 흥미롭다. 이론을 실천한 삶이다.

 

  라캉을 보면 욕망은 나이의 문제가 아닌 열정의 문제다. 그의 말대로 욕망은 동력인가보다. 일이건 사랑이건 죽어도 좋을만한 욕구가 70대까지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요 신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친구의 아버지 일을 생각하니 열정을 놓지 않고 무언가 쌓아야한다. 아니, 쌓은 것 다 버릴 수 있는 어떤 감성을 길러야 하는 건가.

  저녁의 아름다움이야말로 나를 사로잡는 가장 큰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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