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아름다운 축제

칠부능선 2006. 6. 20. 00:36

 

 

[새아침을 열며]           아름다운 축제
 2006/06/20
노정숙
수필가

우리는 광장으로 나왔다.

 

방에 갇혀있던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대명제를 걸치고 거리로 나왔다. 4년 전, ‘작가는 모름지기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꼬드김에 빠져 딸내미의 붉은 티셔츠를 찾아 입고 시청앞 광장으로 나갔다.

그동안 뭉치고 싶었지만 구실이 없었던 우리민족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일사불란한 민족의 힘으로 우리는 ‘4강 신화’를 얻었다.

 

다시 월드컵의 시간이 되었다.

 

‘만약 승부가 없는 운동경기가 있다면, 그래서 이긴 팀도 진 팀도 없게 된다면, 그래도 사람들은 운동경기에 관심을 가질까.’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우연한 기회에 서구인들에게 축구를 배우게 된, 뉴기니에 사는 가후쿠 가마족의 축구 경기가 그렇다. 그들은 양 팀의 승부가 똑같아질 때까지 며칠이고 계속해서 시합을 한다.

 

득점에 치열한 축구경기를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그들만이 즐기는 ‘축제’로 만들어 버렸다.

 

월드컵을 생각하며 승리지상주의에 대한 반성과 삽시간에 하나로 뭉쳤던 우리의 민족주의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왜 월드컵에 열광하는가. 보이는 것에만 매달려있는 우리, 선수들의 실력이 곧 국력인양 온 나라가 들썩인다. 우리나라 대표팀의 몸을 사리지 않는 투지와 집중력, 완벽한 팀워크에 단련된 체력으로 선전하는 것은 너무도 대견하고 고맙다.

국력과 대표선수들의 기량의 상관관계를 헤아리며 현실의 어두움을 잠시 잊고 기대감과 흥분에 빠진다. 태극전사들의 승전보에 우리의 내일도 희망편으로 몰아간다.

 

언제부터 부르르 끓고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이 우리 것이 되었는가. 우리민족의 특성이라 배운 ‘은근과 끈기’는 어디로 갔는가. 국민소득과 행복지수가 비례하지 않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순위에 초연하려면 국민소득이 3만 불은 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쯤 되면 국제적 운동경기를 느긋하게 즐기지 않겠는가.

 

이 과열이 두렵다. 월드컵에서 자유로울 권리도 있다. 월드컵을 경쟁이 아닌 축제로 바꿀 수 있는 날이 오면, 우리는 물질이나 자연현상을 초월한 보이지 않는 세계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할 것이다. 그때 우리도 가후쿠 가마족과 같은 축구를 즐기지 않겠는가.

 

[경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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