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17년만에 책을 냈다. 등단하고나서 고민에 빠졌다. 문학적이지 않은 자신의 글을 좀 더 문학적으로 쓰고 싶어서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시 공부도 하며 부단히 노력하니 문학에 대한 질문은 다소 해소되었으나 여전히 작품으로 표현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삶이 풍성해지고 충만해졌다고 한다.
그럼, 된거다.
'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대추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오래 휘어져 있곤 했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나 표현에는 서툴렀다.
작가가 원하는 문학적 지점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항상 삶이 우위에 있다. 이제 안심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어려서는 아픈 엄마가 돌아가실까봐 걱정을 안고 살았고, 남편이 군인인데 고성 산불과 파주, 인제의 산사태를 겪었다. 살아가면 순응해야할 일과 극복해야하는 일을 많이 오갔다.
군인가족으로 겪은 일들이 솔직하고 신선하게 전해온다.
첫 작품집에 박수보낸다.
* 아직 더 살아야 할 운명이었는지 어둠 속에서 "천천히 후진하라"라는 말이 들려왔다. 뒤에 막혀 있던 차들부터 안내에 따라 조금씩 후진을 시작했다. 교량의 얕은 난간에 걸려 있던 우리의 승용차도 휘몰아치는 계곡의 물길에서 겨우 비켜날 수 있었다. ....
검은 암벽으로 느껴졌던 산들이 안개를 덮어쓴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계곡의 곳곳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다. 무너져 내린 돌들, 뿌리 째 뽑혀진 나무, 길옆 배수로에 넘어져 있는 승용차까지. 우리는 산사태가 난 곳을 헤집고 인간 띠를 만들어 쓰러져 있는 나무에 의지한 채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96쪽)
* 미사가 시작되자 신부님은 유창한 우리말로 미사를 집전했다. 그의 언어사용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구사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언어다.
신부님은 평화의 인사말을 "잘난 척하지 마십시오"로 정해주었다.
- 꽁지머리 신부님 (141쪽)
* 그해 여름
박달동 반지하 방의 여름밤은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로 얼룩졌지
비닐장판 밑은 질퍽거렸고
가재도구마다 곰팡이들이
시커멓게 달라붙었어
신문지를 둘둘 말아 장판 아래 물을
대야에 짜내며
보일러를 켜고 선풍기를 돌려 보아도
얼굴로 등으로 다리로 습기는
거미줄처럼 달려들었지
어느 날 아침 주방 싱크대 안에서 치잌~
직선으로 뿜어 나오던 하얀 기체
자던 아이들은 놀라
현관 밖으로 뛰쳐나갔고
녹이 슨 부탄가스통을
현관 밖으로 힘껏 내던졌지
하얀 기체가 뿜어져 나가고 남겨진
빈 깡통 위로
아침 햇살이 다가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놀란 가슴을 다독거렸어
그해 여름
(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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