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칠부능선 2024. 12. 10. 21:59

'한 세기에 한 명씩만 나오는 작가'

30개국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상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초판 20쇄다.

얼마전에 네플릭스에서 키건의 소설 <맡겨진 아이>가 영화로 나온 <말없는 아이>를 봤다. 먹먹한 울림이 오래 남았다.

소시민이 의식에 눈 뜨는 순간, 의식하지 못하고 살던 가슴 깊은 곳에 눌러두었던 감정이 어떻게 터지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멀쩡한 겉모습 속에 잔잔히 균열이 시작하는 과정도 촘촘하다.

환대받지 못한 출생, 뿌리내릴 수 없는 곳에서 자라야 했던 성장기,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으로 자신을 몰아가지만 속에서 뭔가가 자란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역설이다.

개인의 안위를 위해 묵인해야하는 것과 사회의 안위를 위해 밝혀야 하는 것이 있다.

불법과 잔혹을 눈 감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요즘 우리 현실과도 잇닿아 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건 이런 야만의 시기가 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다시 첫 장으로 왔다. 어렵지 않은 문장인데 뭔가 미진하다. 설렁설렁 읽어서는 안 되는 짧은 소설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곧 개봉된다고 한다. 검은 배경과 스산한 풍경이 그려진다.

* 야적장 정문에 도착했는데 자물쇠가 성애로 덮여 꿈쩍 않은 걸 보고는 삶이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침대 속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펄롱은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길 건너 불 켜진 이웃집으로 갔다. (63쪽)

* 일요일이 너무나 공허하고 힘겹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왜 펄롱은 다른 남자들처럼 미사 마치고 맥주 한두 잔 마시면서 쉬고 즐기고 저녁 배부르게 먹고 불가에서 신문을 보다가 잠들 수 없는걸까? (93쪽)

*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1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