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최현숙 선생님을 못 뵌지 수 년이 되었다.
만나지 않아도 가끔 생각나는 분이다. 온화하면서도 강직한 느낌이 믿음직스러운,
'난, 이런 사람이 좋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쓴다면 내 글에 등장할 1인이다.
오래 숙성하여, 무르익은 수필집이다.
수필집 한 권을 읽으면 그 사람이 보인다. 짐작한 그대로라서 더 반갑다.
깊이 고개 숙이며 박수보낸다.
나날이 글을 품고, 기쁘시길 빈다.
* 글을 만나면서 외로움 낯섦과도 친해졌습니다. 보이는 풍경 오가는 말 심지어 자동차 소음까지 글감으로 다가왔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글이 되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부대끼는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고 소소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눈도 갖게 되었습니다. 수필의 길에 들어선 보람입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태풍 설거지로 한나절을 보내며 생각한다. 다 익은 열매를 떨구고 마당을 휘저은 것은 태풍인가 무관심인가. 밤새 불어 닥친 바람에도 농장은 끄떡 않는데 담장으로 둘러싸인 마당은 성한 곳이 없다. 농장이 온전한 것은 넉넉한 거름으로, 과감한 열매솎기로 욕심을 덜어낸 덕분이 아닐까. 사람 몸은 칠 할이 종양을 지니고 있고 면역력이 약해지면 그것이 병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바람의 말' 중에서 (66쪽)
* 가장 기다려지는 날은 토요일이었다. 주말마다 문을 여는 한국학교에서는 교민이나 주재원 자녀들에게 국어와 역사를 가르쳤다. 그것은 낯선 문화에 부대끼고 풀죽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감을 주는 일이었다. 내 교직 생활에서 가장 기쁘고 보람 있던 시절은 우리말이 어눌한 아이들을 위해 꼼꼼하게 교안을 작성하고 가르치던 그때가 아니었을까. '피아노' 중에서 (143쪽)
* "넘어져 아파서 우는데 이 산신령 할아버지가 날 구해줬어."
그때 작가(김훈)는 일흔이었다. 그러니까 일흔은 사진 속 나이가 아니다. 아직 조금은 쓸모가 남아 무언가를 시작해도 좋은 때, 어딘가 손길이 미칠 곳을 찾아 다가가기 좋을 나이다. 물기가 말라가는 일흔은 가붓한 나이다. 삶을 따르느라 그동안 가슴에 쟁여놨던 일들을 거침없이 해볼 수 있는 시기다. 사뿐히 뛰어들 수 있는 나이다. '산신령 나이' 중에서 (168쪽)
* 많은 자녀에다 남편까지 더해 힘에 겨운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본이 되어주신 당신 회갑을 맞아 우리는 저마다의 사랑으로 헌수사를 드렸다.
" 너무 높아서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 깊어서 들여다볼 수도 없습니다."
글썽이며 읽었던 내 망음의 한 구절이다. '남 끝동 자주 고름' 중에서 (193쪽)
* 불 놓기 좋은 날이다. 아침부터 눈이라도 올 듯 어둑하던 하늘이 시간 갈수록 점점 가까이 내려온다.
농장 한 모퉁이 공터에 불탄 자리가 있다. 잡다한 쓰레기를 태우느라 검은 흔적으로 남은 곳이다. 농사철 오기 전에 어머님이 쓰시던 물품들을 보내드리자고 잡은 날, 바람 한 점 없이 흐린 오후다.
'풍화' 중에서 (205쪽)
최현숙 선생님~~ 내내 이렇게 환하게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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