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사람이랑

미리 세배

칠부능선 2022. 1. 25. 19:37

섣달 그믐도 아니니 묵은세배라고 할 수도 없고, 

지난주에 88세 큰어머니가 다치셨다고 해서 바로 다녀왔다. 

오른쪽 다리 무릎 위까지 깁스를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세상사 모두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않는다, 그때 운이 나빠서 이렇게 된 것이지 운전자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누군들 아프고 싶어 아프겠냐, 다치고 싶어 다치겠냐'고. 골목에서 차를 피하다 넘어져서 생긴일이라며 담담히 이야기하신다.

대화 중간중간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초긍정적인 성격은 그대로인데 왠지 대화가 잘 이어지질 않았다. 우리한테 존대를 하시는 게 걸리긴 했다.

저녁에 큰댁 서방님 전화를 받고 황당했다. 우리를 몰라본 거다. 어떤 내외가 다녀갔다고 하셨단다. 

큰어머니, 어쩌면 좋아요. 일시적인 기억장애이기를... 

 

오늘은 도곡동 숙부 댁에 가서 두 분을 모시고 인천에 사는 98세 큰고모님댁에 갔다. 

큰고모님은 아직 기억력도 좋고 목소리가 쩌렁쩌렁하시다. 요양보호사가 매일 와서 말벗을 해 준다고 한다. 

숨이 차서 병원에 다니긴 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하신다. 집은 말끔하다. 회와 청국장을 준비해 놓아서 점심을 먹고 왔다. 큰고모님은 항상 밥을 먹여보내야 한다. 

오늘은 숙부님의 어린시절 이야기까지 들었다. 전쟁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예전에는 숙부님이 90% 말씀하셨는데, 그 뒤를 남편이 이었다. 몇 탕을 들은 이야기인데도 또 새로운 사건이 나오는 게 신기하다. 

나는 기사이자 청자로 그저 조용히 웃으며, 남편을 제지할 기회를 엿본다. 성공하지 못했다.

두 분 건강하셔서 이 순례가 뿌듯한 마음으로 이어지길. 

 

 

 

 

 

작년에 열린 귤 두 개를 따지 않았는데

꽃이 피었다 

한 생을 나무에 묶여 다시 살고 있는 귤

향그로운 이 꽃이 지면 그 자리에 맺을

다음 세대의 귤

선뜻 자리 내 주지 못한 작년 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마르지도 썪지도 않은 이 멀쩡한 귤은

.... 한 건가 

 

 - 한 샘댁에서 본 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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