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시간을 건너오는 기억 / 문혜영

칠부능선 2021. 11. 7. 12:02

 원주의 문혜영 선생은 사진도 찍고 시도 쓰며 수필을 가르치는, 활동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보였다. 먼발치에서. 

<THE수필> 선정위원으로 합류하면서 가까이 보게 되었다.

세상에나~~ 난 이 책을 읽으며 계속 감탄하고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1부, 세월   2부, 사랑 

 원산에서 모도로, LST를 타고 거제도 피란민 수용소로.... 세 살때 아버지가 실종되고, 어머니와 네 자매의 생활상은 뭉클하다. 든든한 언니 둘과 동생, 아버지 기억이 없어도 아버지의 품성을 물려받은 네 자매는 아버지가 못 다 사신 생을 넉넉히 살아내고 있다. 선생님의 환한 얼굴의 연유가 이 끈끈한 사랑에 있었던 거다.

 

 

3부, 투병 

 감사와 사랑으로 통증을 꽃으로 피워냈다. 

 

*문학은 내가 만들어 가는 유일한 울음의 길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글이 울음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덕에 용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132쪽)

 

 

4부, 인연 

먼발치에서 몇 번 뵈었던 선생님들의 속살을 보는 듯 정겹다. 

맞아, 그랬을거야. 그럼, 그럼~~ 세상에나~~ 정말 부럽다. 이런 마음으로 따라갔다. 

이런 글은 문혜영 선생만이 쓸 수 있는 귀한 글이다. 빛나는 세월이다. 

 

* 한 세상 바람처럼 흐르다가 고 허세욱 선생 - 생전에 행사장에서 몇 번 뵈었다. 외모에서 풍기던 풍성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항암치료 중에 살뜰히 챙겨주신 마음씀에 내가 다 고맙고 울컥한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그리 훌쩍 떠나셨다. 

 

땅이 무너진 것 같다. 선생 한 사람이 떠났는데, 지구의 반은 꺼져 내린 것 같은 아득한 슬픔이 인다. 선생이 떠나고 계시지 않으니까, 선생의 글에서도 이별에 관한 내용만 눈에 들어온다. (162쪽)

 

* 큰 느티나무 그늘에서 고 박연구 선생 - 뵙지는 못했지만 구구한 이야기를 들었다. 윤재천 선생님은 박연구 선생을 "수필에 살고 수필에 죽는 사람'이라고 했다. 

 

수필 잘 쓰는 사람이 제일 예쁘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던 분, 어느 지면에서든 잘 쓴 글이 눈에 띄면 무척 반가워하며 그 작가에게 먼저 책을 보내고 정성을 기울였다. (167쪽)

 

* 이 시대의 최고 사랑꾼, 고 정진권 선생 - 행사장에서 몇 번 뵈었는데, 항상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계셨다. 선생이 싫어하는 게 나랑 똑 같다. 멀리서만 뵌 게 아쉽다. 

 

선생의 사랑 목록을 다 열거할 수가 없다. 늘 사랑이 흘러넘쳐 이 세상 모든 것에 다정다감하셨기에 헤아리기가 어렵다. 오히려 무엇을 싫어하셨나 생각하는 편이 헤아리기 쉽다. 선생이 가장 못마땅히 여겼던 건 시간약속 어기는 일이다. 그리고 장황한 걸 싫어하셨다. 세미나 같은 행사장에서나 사석에서 말이 간결하지 않고 사설이 길어지는 사람을 못 견뎠다. (175쪽) 

 

* 한 걸음 다가서지 못하고 우송 고 김태길 선생 - 오래 전, 현대수필 특강에 초대했을때 내가 선생님 댁으로 모시러 갔었다. 특강 장소가 분당 다래성이었다. 끝나고 율동공원을 걸으며 몇몇이 2차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훤칠하신 키에 80세  가까운 그때도 테니스를 하고 계셨다. 오전에 선생님을 모시면서 내 이름을 말씀드렸는데, 오후에 헤어지면서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1994년 3월 현대수필문학상을 황필호 선생과 문혜영 선생이 공동수상을 했을 때, 축사다.

 

" 이 세상에서 아내 노릇 중에서 가장 힘든 건 철학자의 아내로 사는 걸 거예요. 현실은 나 몰라라 하면서 매일 돈도 안 되는 진실에만 관심을 두니까요. 그리고 이 세상 남편 노릇 중에서 가장 힘든 건 글 쓰는 여자의 남편으로 사는 걸 거예요. 문학 하네 하면서 뜬구름 같은 꿈에 사니까요. 그러니까 오늘 수상은 여기 계신 철학자의 아내와 글 쓰는 여자의 남편께 드리는 겁니다" 역시 우송 선생다운 위트였다. (193쪽)

 

* 백로를 닮은 선비, 고 김시헌 선생 - 현대수필 행사장에 가끔 오셨다. 내 첫 수필집 <흐름>을 보내드렸더니 엽서에 빼곡하게 좋은 말씀을 써서 보내주셨다. 그 후에도 책을 받으시면 꼭 엽서를 보내오셨다. 동인지까지도. 감동이었다.

 

강의를 끝내고 식당으로 이동하려고 지하 계단을 내려서는데 옆에 다가와 부축하는 어느 수강생의 손길을 받는 순간, 아! 강의를 접어야 할 때구나 생각하셨다고 했다. 그날 다방에 들어가 몇 시간 곰곰 생각하다가 곧바로 출강하던 3-4곳의 문화센터 책임자에게 그만두겠다며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그때 팔십의 나이셨다. 물러섬의 순간 질척이지 않음은 참된 용기이며 자유로움이다.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쉬운 결단이 아니다. (204쪽) 

 

어디서 별이 되어 만나리 - 고 유병석 선생

큰 바위 얼굴 - 난대 고 이응백 선생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 - 맹난자 선생

정경, 그 이름은 한동안 아픔이었다

지음 - 김봉군 선생

닿지 않는 섬 - 윤재천 선생

 

우러를 선생님들과의 추억이 펼쳐진다. 고인이 된 분들이 많지만, 사라진 게 아니다. 이렇게 소롯이 기억하고 추억하는 한 선생들은 불멸이다. 

 

 

 

5, 문학

 

박경리 선생의 삶과 문학 

 

『토지』를 집필하면서 작품의 배경이 되는 경남 하동 평사리 악양 들판과 만주 땅 용정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으면서도 사실적으로 생생히 묘사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책이 다 나온 뒤, 그곳을 둘러보고 선생 자신도 불가사의하게 생각할 정도였는데, 이에 대해 선생은 지리와 기후를 비롯한 관련 책자들을 읽고, 상상력과 직관력으로쓴 것임을 밝혔다. 선생에게 있어 상상력은 글을 쓰는 원동력이다. 상상력 없는 글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하였으며, 그러한 상상력은 많은 독서가 밑거름되었음을 강조하였다. (267쪽)

 

 

치열하게 살아내셨고, 열정으로 살고 계신 문혜영 선생께 깊이 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