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도래할 책 / 모리스 블랑쇼

칠부능선 2021. 11. 13. 11:39

꽤 오래 잡고 읽었다. '도래할 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모리스 블랑쇼, 그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사상가'라고 불리는 것도 궁금했다. 

그의 언어가 궁극적으로 우리의 학문적,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우리 삶에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 또 무슨 뜻일까. 많은 철학가와 작가의 작품을 흝으며, 두꺼운 책을 덮으면서도 환하게 느껴지는 건 없다. 어슴프레... 언어 너머, 문학 너머의 무엇이 우리를 이끌어 갈것이라는 것?

 

 

* 『수첩』에 붙은 부제 주베르의 내면의 일기는 우리를 헤매게 하긴 하지만 오해하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은 바로 가장 깊은 내밀성이며, 이 내밀성에 대한 탐구이고 그곳으로 다다르기 위한 길이며, 결국에는 그것이 틀림없이 하나로 녹아들게 될 말의 공간인 것이다. (103쪽)

 

* 괴테는 마흔 살에 이미 유명 작가가 되었으면서도 자신이 시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화가나 박물학자가 아닌지 자문하고, 갑자기 이탈리아 여행길에 나선다. 버지니아 울프는 가장 재능있는 예술가이면서도 어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매번 자신감이 흔들리고, 소위 자기 자신을 빼앗긴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 확신과 힘으로 가득 찬 폴 클로델도 『인질』을 다 쓰고 난 후, 지드에게 이런 편지를 쓰고 있다. '과거의 경험이라는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 새로운 각각의 작품이 새로운 문제를 부과한다. 이 문제를 앞에 두고 새내기처럼 모든 불확실함과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 (193쪽)

 

* 작가는 때때로 거의 아무것도 완성하지 않으려고 무수한 이야기를 단편의 상태로 방치해 둔다. 이 이야기들은 그를 어떤 지점을 넘어서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 또한 놀라운 우연의 일치인데, 거의 모든 점에서 다르지만 엄밀하게 쓰려고 신경 쓴다는 점에서는 가까운 두 인물,  폴 발레리와 카프카라는 두 인물이 입을 모아 "내 작품 전체는 연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376쪽)

 

* 회의는 시적인 확신에 속하며 마찬가지로 또한 작품을 긍정하는 것의 불가능성이 우리를 작품 고유의 긍정으로 근접시키는 것이다. "계속해서 깨어 있고, 의심하며, 요동하고, 빛나며, 명상한다"는 다섯 개의 어휘를 통해 사유에 그 배려가 맡겨져 있는 저 긍정으로 다가가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451쪽)

 

*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왔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구절이다. 이 구절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 내로의 진입의 역할을 하지만, 이 문장 가운데 그 어떤 말도 문학에 속하는 것은 없다. 이것은 문학 내로의 진입이지만 그것이 문학의 징표가 되는 기호나 문장을 갖춘 언어의 출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언어가 백지의 공간에 난입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문학이라는 부재의 공간에 말이 난입하였기 때문이다. (4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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