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필사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칠부능선 2021. 1. 6. 13:07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시 - 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보호 좌회전 / 복효근  (0) 2021.02.17
바람에게도 길이 있다 / 천상병  (0) 2021.01.06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0) 2021.01.06
코로나 학번 / 류근  (0) 2020.12.31
자기 사랑 / 정연복  (0) 2020.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