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댄스, 댄스>

칠부능선 2019. 12. 9. 18:11

 

댄스, 댄스 

노정숙


 

언제부터 소문난 몸치가 되었는지 내가 댄스를 배운다고 하니까 모두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단체로 치는 박수에도 박자를 놓쳐 엇박수를 치고 있어 민망할 때가 많았지만, 몸치라고 어찌 흥도 없겠는가. 리듬이 빠른 음악을 들으면 몸이 저절로 굼실거리는데, 실은 몸보다 마음이 더 잘 반응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 몸이 새삼스레 어벙벙한 게 아니다. 젊은 시절 에어로빅 강습에서 늘 한 박자 늦어서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하고 며칠 다니다 포기했다. 그 후 몸으로 리듬을 타는 일은 바라보는 것으로 족했다.

내 몸이 굳어진 것은 몸과 마음 사이에 긴밀한 연결점이 없기 때문이다. 늘 몸과 마음을 분리해 놓고 생각하는 습성이 괴리를 만든 것이다. 가슴 속에서 출렁이는 리듬을 몸이 따라오질 못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어쩌다가 취기가 온몸에 퍼지면 박자나 리듬에 상관없이 흥을 내보이기는 한다. 그때는 조명도 흐리고 나를 보는 시선도 없을 테니 맘 놓고 펄펄 뛰며 마음과 몸을 무장해제 한다.

몇 해 전, 맑은 정신으로 취하는 엑티브 명상을 맛봤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명상에 드는 것이다. 정신의 바닥을 헤집어보고 마음을 풀어놓는다. 모던한 살풀이춤이라고 할까, 몸치가 드러나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다. 그때만 해도 주위 시선을 의식하여 명상에 깊이 들지 못하고 몸에 자유도 주지 못하고 말았다. 보름달빛 아래서 오감을 열고 자연의 기운을 느끼며 내 안의 웅크린 나를 어루만지던, 낯설면서도 푸근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친구 덕에 시작한 라인댄스는 파트너 없이 음악에 맞춰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 시간에 8천 보 정도 발을 움직여 등에 땀이 날 정도니 확실히 운동이 된다. 에너지 넘치는 동작을 바라보는 것만도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내 취향에 맞는 매력 넘치는 선생님도 만났으니 이제 몸의 긴장을 뺄 때가 되었다. 마음을 온전히 부리는 몸은 아름답다.

요즘 방탄소년단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그들의 노래를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고도로 기획된 춤은 경탄을 자아낸다. 한 치의 오차 없는 칼군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훈련을 했을까. 폭발적인 힘을 담은 꺾임과 흐름이 기쁨으로 넘치는 동작을 보면 노력의 지층이 느껴진다. 그들의 난해한 음악이 열혈 춤으로 완성된다.

내가 추는 춤은 완성의 목표가 없는, 나만을 위한 동작이라 안도한다. 옆 사람, 앞 사람과 선을 맞춰야하는 약간의 긴장감을 주는 것도 좋다. 홀로 삼매경에 들어 여유롭게 추는 사람, 힘껏 신나게 리듬을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도 즐겁다.

춤이 몸을 위한 것인지 정신을 위한 것인지 다시 짚어보니 이것은 몸을 통한 정신의 쾌락이니 일거양득이다. 한 시간에 만보걷기 효과를 얻고, 반복해야 하는 동작을 익히려면 몸의 무딘 기억력도 일깨워야 한다.

속 시끄러운 일, 머리 무거운 일이 있어도 음악을 들으며 발을 움직이니 마음이 덩달아 가벼워진다. 이제 남의 시선에 어느 정도 무감해졌다. 맘껏 몸과 마음을 들뜨게 해도 좋을 나이다.

나이 들어 정신이 헐거워지는 건 다행이다. 몸이 더 굳어지기 전에 리듬을 실어주어, 내가 꿈꾸는 정신뿐 아니라 몸도 하늘하늘 말랑말랑한 노인이 되어야 한다. 귀를 열고 입은 닫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야 한다. 몸보다 먼저 설레는 가슴을 귀히 여기며,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순서를 헤아리지만 내 발은 여지없이 어둔하다.

반 박자 늦는 내 엉거주춤, 이것도 춤은 춤이다.


<문파문학> NO. 054.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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