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시 - 발표작

나, 이용휴

칠부능선 2019. 9. 24. 17:44

나, 이용휴

노정숙



  나는 1708년에 태어나 75년 동안 이 땅에서 살고 간 혜환 이용휴다.

  내게 문학은 경세의 도리와 학문의 이치를 담는 도구가 아니라, 내 존재를 발견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반영하는 창이다. 내가 살아온 시대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하여 사대부는 전공을 가지고 몰두하는 것을 금기시했지만 나는 오직 문장가의 길을 걷겠노라고 천명했다. 이런 나를 기이하고 괴상하다며 주자학자 심낙수는 내 글이 ‘간사하고 방종하다’고 혹평을 하고 정약용은 나를 ‘재야문형在野文衡’으로 칭했다. 어쨌거나 나는 재야에서 30여 년 동안 문단의 저울대가 되었다.

  산문에서 어조사를 쓰지 않고 시에서는 형식과 격식을 버리고 더 자유롭게 썼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은 작품에 담지 않으려 노력하고, 통념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했다.

  어느 날 ‘내 집에 세 들어 사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왜 남을 따라만 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하고 심할 때는 말하고 웃는 것, 표정까지도 남의 노리갯감으로 바치고 있는지. 정신과 땀구멍과 뼈마디 하나도 내게 속한 것이 없게 느껴지니 부끄러웠다. 나라고 믿는 것이 내가 아닐 수도 있으며 자신이 모른 채 남들에 기대 한평생을 살수도 있다. 나의 근본인 천륜을 즐거워하며 내 일에 힘을 쓰는 것이 나다운 삶이다.

  나다운 삶을 필생의 목표로 삼았는데 내가 쓴 글에 편지글과 축문, 송서, 기문이 많은 걸 보니 문학의 인연으로 모든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남에게 의례적으로 써주는 축문이나 기문에서 과하지 않으려고 나를 단속한다. 누가 보아도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며 그 사람의 본모습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

  세상 언저리를 서성거리다 떠난 일가 정수 노인의 제문이다.

  ‘그대는 세상에 있을 때도 세상을 싫어했지요. 이제 돌아가는 곳은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마련할 일도 없고 … 세상의 차디찬 인심이나 옳고 그르다 따질 소리도 없을 것입니다. 다만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들꽃과 산새만이 있을 터이니 이제부터 항상 한가로울 수 있겠습니다. 그대가 이 말씀을 들으신다면 내 마음을 아는 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시겠지요. 흠향하시옵소서.’

  내 주위에는 어찌 그리 가난하나 높은 기개에 대책 없이 애틋한 사람이 많은지. 나는 그들의 모습을 수식 없이 쓴다. 상투적인 칭송으로 죽은 자의 귀를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 장수를 빌어야 하는 수서壽序를 쓸 때도 나무와 돌, 물고기에게도 허락한 장수를 오직 사람에게만 쉽사리 허락하지 않은 까닭은 밝힌다. 육신이 쇠퇴하면 의식이 어두워지기 십상이라 일을 망치고 덕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마땅히 맞이할 죽음을 슬픔과 절망으로 인식하지 않고, 해학으로 푸는 게 좋다.

  나는 살아 있는 벗을 위한 묘지명을 쓰기도 했다. 나이 스물둘에 진사가 된 허필(허연객)은 집안을 돌보는 일은 아내와 아들에게 맡기고 세상물정 모르고 살았는데, 자신이 죽었을 때 아들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생지명을 부탁한 것이다. ‘내 연객에게 고하니 달관한 듯 달관하지 못하여, 아직도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소. 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가 자네의 나이요. 아름다운 산과 물이 그대의 거처요, 빠지지 않은 치아와 머리털이 그대의 권속이요, 애환과 행불행이 그대의 이력이다.’ 시류에 따르지 않는 내 글은 외롭기도 했다.

  나는 일찍이 『본초』를 읽어서 풀에 대한 웬만한 지식은 갖췄다고 생각했다. 시골길을 가다가 초오라는 독초를 시골 아낙에서 물어서 알았다. 묻지 않고 캐서 먹었더라면 어찌 되었겠는가. 그 일이 있고서 「호문설」好問說을 지었다. 이치로만 알던 지식은 산지식이 되지 못한다. 대강 알고 있던 것이나 의심나는 것은 물어서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소리시늉에 갇혀 살다 죽는다.

  경희궁에 있는 전각에 ‘일신헌명日新軒銘’을 써서 상감께 바쳤다. 아침에는 읽고 낮에는 강론하며 밤이면 생각하여,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과실이 있으면 고치고 의로우면 행해야 한다. 사납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교양 있는 사람들 다스리기가 더 어렵다. 그들은 어떤 상황이든 성인의 경전이나 법전을 들먹여 딴죽을 걸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교활해지기 쉽고 점잖은 척 포장하기도 쉬우니, 이들을 다루려면 임금은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없어야 한다.

  손자에게 이른다. 만족할 줄 아는 자는 하늘이 가난하게 할 수 없고, 구하는 것이 없는 자는 하늘이 천하게 할 수 없다. 시름과 고통은 참기 쉽고, 기쁨과 즐거움을 참기는 어렵다. 노여움과 분노는 참기 쉽고 좋아함과 웃음을 참기는 어렵다. 천하게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이 없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다. 옛사람에게 양보하면 의지가 없는 것이고, 지금 사람에게 양보하지 않으면 아량이 없는 것이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사람의 지기志氣를 길러주기도 하지만 선한 바탕을 없앨 수도 있다. 늘 경계하며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송사해야 한다.

  한여름에 연담 김명국의 수묵산수도를 펼쳤더니 온 집안이 서늘해져서 솜옷이라도 둘러야 할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그림 잘 그리는 것으로는 이허주가 뛰어나지만 정밀함은 지나치고 환화幻化는 부족하다. 우주만물의 변화와 소통하는 것은 기능의 연마로는 닿을 수 없고, 정도와 정격을 넘어서야만 열리는 경지라야 가능하다.

  입만 열면 『시경』과 『서경』을 인용하던 맹자가 “『서경』을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한 뜻을 새긴다. 기록에 남은 일이라도 오류와 한계까지 읽을 수 있어야 올바른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로 믿어지지 않는 괴이한 내용의 책 여럿에 발문을 썼다. 기이한 일들을 세상의 상식으로 묶고 가두어서 엉터리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기발한 생각은 벽이 없다. 벽을 뛰어넘어야 나만의 문장에 이른다.

문장을 배우는 것은 등산하는 것과 같아서 무한히 험한 길과 지름길을 다 밟아 본 뒤에야 산 정상에 이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깨우치는 데 

30년 걸렸다. 비로소 내 목소리 내기의 엄격한 잣대를 가졌다.

  나는 이곳에서도 새뜻한 생각에 웃고 진부한 문장에 운다.


<수필미학> 2019.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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