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 아프다

칠부능선 2019. 3. 29. 17:08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며칠, 나흘을 두고 읽었다. 단숨에 후르르 읽기가 미안한 책이다. 아니 목이 콱 막히고 기운이 떨어져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대목들이 있다.

 

  허수경 시인의 서늘한 시도 좋았는데 발굴지에서 쓴 이 산문집은 그가 죽고 나서 읽어서인지 더욱 시리다. 

  바빌론과 시리아에서 죽은 자들의 무덤을 파고, 런던과 파리와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고고학박사가 되어 독일에서 살다 병들어 죽었다.

  죽기 전, 병실에서 개정판 작가의 말을 썼다. 

  기적이 온다면 이 책을 크리스마스에 벽난로 앞에 앉아 만질 수 있을 텐데... 만지고 싶은데.... 그는 2018년 10월 3일 지구별을 떠났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탐사한 기록들... 스스로 죽음이 되어 쓴 책을 어찌 술술 읽을 수 있겠는가.

  며칠 슬폈다. 맘이 착 가라앉고 그의 죽음에 맘이 얹어졌다.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일찍 가장이 되었다. 그것은 여성성을 포기하고 강해져야 하는 일이었다.

  모래 사막인 발굴지에서 일주일 동안 7킬로가 빠지고 누군가 입에 넣어 준 미음을 먹고 일어난 일이 곁에서 본 듯

  아프게 그려진다.

  전쟁중에 이라크 거리에서 만난 이들은 참혹하나, 거기서도 혼자인 자신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내가 무덤을 건드리는 것을 저어하는 까닭은 다만 죽은 자의 휴식을 정말, 방해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그것이 고고학자의 일상이니

  또 얼마나 마음이 부대꼈을까. 그런 중에 새 가족을 만들고... 이건 참 다행인데 이것도 왜 이리 쓸쓸한 기조인지.

  아프고 힘든 책이다. 그렇지만 아끼고 안아주리라.

 

* 누군가가, 빨리 철수를 하라고 외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서쪽 하늘이 누렇게 변하고 있었고 바람이 드는지 내가 서 있는 곳에서도 모래가 자만자만 일고 있었다. 모래 바람이 이곳을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내 손에 들어 있는 노트에서 종이 조각들이 스르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제 나는 이 발굴지를 떠나 모래바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95쪽)

 

* 휴일, 아무도 없는 폐허지를 산책하다가 그늘에 앉아 물을 마시며 내가 판 텅 빈 무덤을 바라보노라면, 글쎄, 그 죽음이라는 것,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이 냄새가 있고 없고를 넘어 다정하게 어깨를 겯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