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想念
윤명희
밤이 늦었는데도 집으로 가는 걸음이 느긋하다. 모임 분위기에 맞춰 약간의 술까지 마셨다.
낮에, 혼자되신지 10여 년이 된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속옷 몇 벌과 종류가 다른 양봉투를 넣고 돋보기까지 챙겼다.
지금껏 딸네에서 하룻밤도 주무시지 않았던 아버지는 우리 집으로 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저녁에 모임이 있어 서둘러 장을 보고 식사를 차렸다. 한 번쯤 모임에 가지 않아도 상관이 없지만, 당신이 오셔도 평소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는 이렇게 늦게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맏이인 나만 단속하면 동생들은 다 잘 될 거라
생각하셨는지 조금만 늦어도 대문을 걸어 잠그곤 했다. 닫친 대문 앞에서 비를 맞으며 아버지가 잠들기를 기다린 그 밤이 원망스러웠다.
입가에 발풀을 붙이며 식사를 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늘을 찌르던 시퍼런 대꼬챙이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술기운이 눈으로 몰린다.
방문을 살짝 열어보니 불 꺼진 방 안이 고요하다. 나는 아버지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말대가리 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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