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에 그리던 삶
이용휴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
꽃 깊은 산속, 인적 끊긴 계곡이 어니어도 좋다. 도성 안에서 외지고 조요한 곳을 택해 몇 칸짜리 작은 집을 짓는다. 방 안에 두는 것은 거문고와 책, 술동이, 그리고 바둑판이 전부. 돌벽을 담으로 삼아 땅을 조금 개간한다. 적토에 아름다운 나무를 심어 좋은 새들을 부르고 나머지 땅엔 남새밭을 일구어 그 채소 따다가 술안주 삼는다. 콩 시렁, 포도 시렁도 만들어 두어 그 그늘에서 더위을 식힌다.
처마 앞에는 꽃꽈 돌을 둔다. 꽃은 굳이 얻기 어려운 것을 구할 것 없이 사시사철 늘 묵은 꽃과 새 꽃이 이어지며 치는 것을 볼 수만 있으면 좋다. 돌은 굳이 옮겨 오기 어려운 것을 취할 것 없이 조그맣더라도 앙상하고 독특하게 생긴 것이면 좋다.
이웃은 뜻 맞는 친구 한 사람, 그 역시 나와 비슷하게 꾸려 두고 산다. 두 집 사이에 대나무를 엮어 사립문을 만들고는 그리로 왕래한다. 난간 옆에 서서 부르면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신발이 벌써 섬돌에 이른다. 비바람이 아무리 심해도 왕래를 그치는 일이 없다. 이렇게 여유롭게 노닐며 늙어 간다.
우연히 구곡동에 들어갔다가 서 씨와 염 씨가 사는 곳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마음으로 상상하던 것 그대로였다. 이를 적어서 기문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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