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책이랑

<섯! > 오봉옥

칠부능선 2018. 7. 29. 14:26

 

 

투사의 가시를 버리고 향기만으로 전한다.

핏빛 향기는 땀과 눈물과 버무려져 아뜩하게 정신을 앗아가기도 하고

가슴을 두방망이질하게도 한다. 독기 쓴기를 버려도 하냥 달콤한 건 아니다.

웃음끝에 묻어나는 쓸쓸함, 잔잔한 서러움이 깔린다. 생래적 슬픔, 고독들이 흥건하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추스르며, 희망, 혹은 환희라는 빛을 그려본다.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시인의 말

어느 날 문득 시를 만났다. 시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스며들었다.

시인이라는 시시한 호칭 하나 부여한 뒤엔 요구도 많아졌다.

자신을 늘 돌아보라 하고, 작고 가난하고 외로운 것들 살뜰히 살피고 챙기며 걸어가라 한다.

단풍 들 나이에 와서야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은 바로 그 시를 만난 일이었음을.

그리하여 새삼 다짐한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지난 팔 년간 쓴 시를 모아 다섯 번째 시집을 낸다.

이 시집을 세상을 먼저 떠난 아버님과 아우에게 바친다. 내가 줄 게 이것뿐이어서 미안할 따름이다.

 

 

 

 

 

 

 

[한겨레 신문]


나의 밥 / 오 봉 옥

밥이라고 쓴다 울컥, 해진다
한때는 밥에 지기 싫어
체 게바라의 삶을 꿈꾸기도 했었다
체를 흉내 내며 농성도 하고 연설도 했다
수배를 당해 떠돌거나 옥밥도 먹었다
결혼을 하고 밥그릇의 비애를 깨달았다
으스대는 갑 앞에서 마음이 상하다가도
어느새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굴욕은 잠시,
모든 것은 지 나 간 다, 하고 스스로 위로했다
비굴하게 몇 마디 비위를 맞추고 돌아오다가
괜히 길가의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했다
혼자서 걷다보면
손가락이,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쓰자는
젊은 날의 초심이 떠올라 목이 또 메어온다

-시집 <섯!>(천년의시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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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옥, 그를 감옥으로 보낸 게 시였지만...


[신간] 오봉옥의 제5시집 '섯!'

[오마이뉴스 홍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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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5시집 <섯!>을 상재한 시인 오봉옥.
ⓒ 오봉옥 제공

1990년 5월 25일자 도하 일간지엔 20대 젊은 시인이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는 뉴스가 실린다. 그때는 박정희와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가 통치하던 군사독재 시절. 28세 오봉옥은 그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했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적출판물 제작'.

당시 서울지검 공안1부가 '적을 이롭게 하는 출판물'로 지목한 것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붉은 산 검은 피>였다. 1945년 해방을 전후해 벌어졌던 좌익의 무장투쟁 활동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이 시집은 1989년 출간됐고, 책이 나온 지 9개월만인 1990년 2월 시인은 물론 발행인까지 체포·구속됐다.

'정권의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는 시와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작가를 수배, 구금, 고문, 투옥하던 시절이 1960년대 이후로 30년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마음 여린 문학청년이었던 오봉옥. '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독재의 감방에 갇혀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한 심정이 어땠을까?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28년의 시간이 시위를 떠난 화살의 속도로 흘렀다. 스물여덟 젊은이는 쉰여섯 중년 사내가 됐다. 시를 쓰는 것이 영예나 자랑이 되기는커녕 올가미이자 족쇄였던 오욕의 시대. 그 시대를 온몸 부대끼며 지나온 오봉옥은 시를 포기했을까?

상상 바깥의 것을 꿈꾸고, 그 꿈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 시인이다. 대부분이 예상한 것처럼 오봉옥은 수난과 고통에도 시를 버리지 않았다. <붉은 산 검은 피> 이후에도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 등의 시집을 냈고, 산문집과 비평집도 출간했다.

'문장' 버리지 않았던 '문인' 오봉옥.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인 그는 자신을 감옥으로 보냈던 시를,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던 시를, 아픔과 아름다움의 복합체인 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오늘 5번째 시집을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 이름하여 <섯!>(천년의시작).

오봉옥 신작 시집 <섯!>
ⓒ 천년의시작

"사랑과 죽음, 민주주의와 꽃이 서로의 등대임을 깨닫게 한다"

<섯!>의 출간 소식을 접한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후배 오봉옥을 이렇게 격려했다.

"광주항쟁을 겪은 오봉옥 시인은 <붉은 산 검은 피>로 엄혹한 고초를 겪었다. 그 시절 그는 브레히트와 네루다의 후계였다. 그로부터 30년. 오 시인은 사랑, 죽음, 민주주의, 꽃, 나비 그리고 인간, 이 모든 존재들이 서로에게 등대임을 깨닫게 해주는 시인이 됐다."

임헌영이 말한 그대로다. 오봉옥의 이번 시집은 '시'와 '시인'이 어떤 존재인지, 왜 '돈도 명예도 되지 못하는 시'를 포기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답변으로 읽힌다. 짤막하지만 울림이 큰 아래 시를 읽어보자.

시인은 죽어서 나비가 된다 하니 난 죽어서도 그 꽃을 찾아가련다.
- 위의 책 중 '그 꽃' 전문.

덥수룩한 머리칼의 20대 청년이 탈모를 걱정하는 50대 중반이 됐지만, 높은 차원의 가치와 이상을 상징하는 '나비'와 '꽃'을 죽어서도 찾아가겠다는 다짐과 결기는 변하지 않았다. 육체의 노화와 정신의 쇠약이 언제나 함께 찾아오는 것은 아니란 걸 오봉옥은 단 한 줄의 문장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다짐과 결기는 <섯!>에 수록된 절창 '나에게 묻는다'의 마지막 연에서 단호한 은유로 구체화된다. 그래서일까? 쉽게쉽게, 대충대충 살아온 이들에겐 오봉옥의 질문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너에게 묻는다
피 한 톨 돌지 않는 장식용 책이나
읽지도 않고 버릴 쓰레기로 살 것이냐
아님 이삿짐 쌀 때 마지막까지 챙길
가슴 뜨거운 책으로 살
것이냐.

청춘시절엔 불의와 부조리에 의연히 항거했고, 나이를 먹어서는 스스로에게 채찍을 던지며 '인간적 완성'을 향해 가고자 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아프다.

오봉옥 삶의 이력과 시의 변화를 읽어내려면...

하지만 오봉옥의 이번 시집은 '매서운 회초리'의 역할만을 하는 게 아니다. 지극한 자기반성 속에서 살아온 시인이 발견한 생의 진실도 따스한 시어로 드러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80~90년대 고통의 서사'와 '2000년대 이후 아픔의 서정'은 오봉옥에게 하나였던 셈이다. 아래 시를 보자.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허공을 가른다
저 허공이 나비들에게 준 신의 선물인 줄도 모르고.
-위의 책 중 '인간들' 전문.

회색 하늘 아래 떠도는 검은 연기인 매연 속에서 아름다운 공간 '허공'을 발견하고, 그 허공이 '신의 선물'임을 포착해내는 혜안(慧眼). 오봉옥은 이처럼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생 포기하지 않았던 '시인의 꿈'을 꾸며.

문학평론가 임우기는 "오봉옥의 신작 시집 <섯!>이 품고 있는 시인됨의 고뇌와 편력을 가늠하는 것은 그의 삶의 이력과 시의 변화를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오봉옥 삶과 시의 이력은 1980~90년대를 살아온 우리의 이력과 다름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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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을 넘으니 하루 하루가 뜨겁다"

문화 / 윤흥식 기자


진보시인 오봉옥, 8년만에 다섯번째 시집 출간
세월과 더불어 원숙해진 시인의 눈 보여줘

문단의 대표적 진보작가로 통하는 오봉옥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섯!>(천년의시작)을 펴냈다. 지난 2010년 <노랑> 이후 8년만이다.

▲오봉옥 시인의 신작시집 <섯!> [사진=남궁은]

오 시인은 1980년대 후반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절, <지리산 갈대꽃>(창비), <붉은산 검은피>(실천문학) 같은 민족사의 비극을 노래한 시집들을 펴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필화(筆禍)를 겪기도 했다.

순수 문학작품을 두고 이적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후일 법무장관 자리에 까지 오른 모 공안검사가 “산이 어떻게 푸르지 않고 붉을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실소를 넘어, 참담함마저 느껴진다.

그 ‘야만의 시대’를 통과하는 동안 청년 오봉옥은 가슴에 불덩어리를 안고 시를 썼다. 시어에는 시퍼런 날이 섰고, 행간에는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 오봉옥 시인 [사진=남궁은]

"늙은 애비 헛간에서 죽었더란다

두 섬 쌀마지기 숨겼다고 쪽발이놈이 죽였더란다
고운 아내 골방에서 죽었더란다.
벌건 대낮에 강간하고 양키놈이 죽였더란다
어이어이 못 산 애비 떠메고 들어갔나
어이어이 못 산 아내 묻으러 들어갔나
꽃아 지리산 꽃아"
('지리산 갈대꽃-아버지 10 '부분)

그로부터 30여년. 이순을 바라다보는 시인의 귀밑에는 어느새 서리가 내렸다. 시어는 부드러워졌고, 세상과 사물을 보는 눈은 깊어졌다. 시인은 신작시집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단풍 들 나이에 와서야 알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은 시를 만난 일이었음을
그리하여 새삼 다짐한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 것이다."

시집 <섯!>에는 시대의 불의에 격정으로 맞섰던 시인이 이순을 앞두고 도달한 내면의 평화를 보여주는 시 66편이 실려 있다. 각 시편들이 드러내는 고른 완성도는 시인의 내공이 30년 시력(詩歷)과 더불어 무르익어가고 있음을보여준다.

▲ 오봉옥 시인 [사진=남궁은]

 

"쉰을 넘으니

하루하루가 뜨겁다
내 가슴은 사랑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

저물어간다는 건
슬픈 일만도 아니다
축복이다
몸이 사위어가니
마음의 눈도 생긴 것
(...)

중늙이가 되어
눈물이 많아졌다
이제 썩은 사과 하나에도
눈이 간다"
('다시 사랑을' 부분 ,책 22~23P)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듯이 시인에게는 모든 시편들이 자식 같을 터. 그럼에도 이번 시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를 꼽으라면 시집 앞부분에 실은 ‘시(詩)’를 꼽겠노라고 오 시인은 말한다.

"어느 날
피투성이로 누워
가쁜 숨
몰아쉬고 있을 때

이름도 모를
한 천사가
제 몸을
헐어주겠다고 사뿐.

사뿐.

사뿐, 그 벌건 입속으로
걸어 들어온 뒤
다시 하늘로
총총
사라져간 것이었다."
(‘시’ 부분. 책 12P)

시인이 세 번의 심장수술과 한번의 척추수술 등 모두 네 번의 큰 수술을 받고 나서 썼다는 이 작품에 대해 임우기 문학평론가는 “득의(得意)의 시편으로 꼽을 만하다”고 평했다.

 

이 시의 심연에서, 시적 화자와 천사와의 만남은 이 시가 감추고 있는 환각의 형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환각은 일종의 혼의 부름이라는 것.

 

“이 시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고 행을 바꿔가며 강조되어 있는 ‘사뿐,/사뿐,/사뿐’은 애써 힘들여 무엇을 도모하지 않고 하늘의 뜻에 가볍게 자기를 일치시키는 시인의 순결한 마음 상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임 평론가는 적었다.

오봉옥 시인의 신작시집 <섯!>은 잘 다듬어진 서정시집이기도 하지만 분단현실의 극복의지를 담은 참여시집이기도 하다. 표제작 <섯!>은 이런 시인의 철학과 지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검문하러 올라온 총 든 군인도
검게 탄 초병들의 날카로운 눈빛도 아니었다
기찻길 건널목에 붉은 글씨로 써놓은 말 섯!
그 말이 급한 우리를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
멈춤 정도야 뭐 말랑말랑한 말로 느껴질 뿐이었다
섯에 비하면 정지나 스톱 같은 말도 그저
앙탈이나 부리는 언어로 느껴질 뿐이었다
남에서 올라온 내 발 앞에 꽝,
대못을 박고 가로막는 섯!
(‘섯’ 부분, 책 41P)

오 시인은 시집 출간 직후 가진 조촐한 출판기념회에서 "돌이켜보면 <지리산 갈대꽃>에서 <섯!>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내가 직접 겪거나, 내 주변 사람들이 경험한 일들을 시로 써왔다"며 "분단현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외면할 수 없는 주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오봉옥 시인은 1985년 창작과 비평사 <16인 신작시집>에 '내 울타리 안에서' 등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펴낸 시집으로 <지리산 갈대꽃> <붉은산 검은피> <나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노랑>등이 있고, 시선집으로 <나를 던지는 동안> <달팽이가 사는 법> 등이 있다.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을 거쳐 현재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계간 <문학의 오늘> 편집인을 맡고 있다.

UPI뉴스 / 윤흥식 기자 jardin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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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옥의 다섯 번째 시집 ‘섯!’

기사승인 2018.07.27


 오봉옥 시인은 문단의 대표적 진보작가로 통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필화(筆禍)를 겪고 옥고를 치룬 시인 중 한 사람이다. 해방 전후의 좌익 활동을 연작시와 서사시 형태로 전면에 드러낸 최초의 시인이었다. 1988년에 창비시선에서 펴낸 ‘지리산 갈대꽃’과 이듬해 실천문학시선에서 출간한 ‘붉은산 검은 피’를 통해 시대의 변화를 읽어냈다.

 그 시절, “브레히트였고, 네루다였고, 김남주의 후계”라는 평가를 받아온 오 시인이 8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섯!(천년의시작·9,000원)’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존재론과 세계관에 있어 이전보다 더욱 심화된 의식을 담고 있다. 시인은 ‘그 꽃’, ‘희망’, ‘나는 나’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동식물 그리고 무생물에 이르는 일체 만물이 존재의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형상학적으로 보여준다.

 또 그가 얼마나 감성 짙은 서정시를 쓰는 시인으로 변모했는지도 느낄 수 있다. ‘시’와 ‘기억의 변증법’, ‘아내’등의 작품에서는 시대의 변화 속에 시인이 어떠한 내면적 방황을 거쳐 삶의 깊은 곳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를 일러준다.

 “일곱 살짜리 계집아이가 허리 꺾인 꽃을 보고는/ 냉큼 돌아서 집으로 달려가더니/ 밴드 하나를 치켜들고 와 허리를 감습니다/ 순간 눈부신 꽃밭이 펼쳐집니다”「등불」부분

 빙그레 미소를 짓게 만드는 예쁜 시가, 우리에게 사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임우기 문학평론가는 “이번에 출간된 오봉옥의 시집 ‘섯!’은 그러니까 시인의 30여 년간의 시력에 아로새겨진 민중시의 통념에 갈등·저항·모순하면서도 하나로 합일을 이루어낸 치열한 고투의 산물이다”며 “이 시집이 품고 있는 시인됨의 고뇌와 편력을 가늠하는 것은 오봉옥 시인의 삶의 이력과 시의 변화를 이해하는 일이 될 터이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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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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